그림책테라피 강사

 

선 굵고 깊이 있는 메시지 강경수 작가의 ‘눈보라’ 속으로 함께 가보자.

북극, 얼음으로 뒤덮인 곳에 곰 한 마리가 태어난다. 하얀 눈보라가 휘몰아치고 작은 곰은 눈처럼 하얗게 빛나는 털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눈보라’라는 이름을 갖게 된 북극곰은 북극에서 자라고 살아가게 된다. ‘눈보라’의 터전은 새하얀 눈과 얼음으로 뒤덮인 추운 북극이지만 사냥을 하고 먹이를 먹고 자라기에는 충분한 곳이다. ‘눈보라’는 장차 북극의 제왕처럼 덩치가 커질 것이다.

그런데 빙하가 녹아내리고 얼음이 줄어들면서 사냥할 곳이 줄어들게 된다. 눈보라는 굶주려서 먹이를 찾아 헤맨다. 그러다가 사람이 사는 곳에 들어서게 되었는데 위험한 침범자로 간주된다. 사람들은 자신을 보호하려고 돌과 총으로 북극곰을 위협한다. 눈보라는 허기와 두려움과 불안에 놓인다. 얼음을 디뎌야 할 발로 사람들의 땅을 밟고 다니면서 사냥으로 먹이를 마련하는 본능조차 잃게 된다.

길 가 쓰레기통을 뒤지던 눈보라는 사람들이 어떤 곰을 보고 환호하는 사진을 보게 된다. 그걸 들여다보다가 사람들 비위를 맞추고 살아남으려면 그 곰처럼 되어야 한다는 걸 알고 위장한다. 사람들은 판다처럼 흙을 칠한 북극곰을 보고 우리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판다가 나타났다며 열광한다. 눈보라는 먹을 것을 주고 부드럽게 손길을 내미는 사람들에 잠시 안도하지만 그 시간은 오래가지 않는다. 판다를 어떻게 이용할까 고심하던 인간들은 눈보라가 가짜 판다임을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다시 총구를 겨누며 북극곰을 자기들 영역에서 내보내려고 한다. 눈보라가 거세게 몰아치던 날 어쩔 수 없이 북극곰은 그 속으로 사라져 간다.

얼음이 녹지 않았다면 눈보라는 평생 사람들의 마을까지 들어서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눈이 내리고 꽝꽝 얼음이 어는 곳을 이리저리 내달으며 사냥을 하고 먹이를 먹고 짝을 만나고 새끼를 낳고 늙어갈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건 특별한 일도 아니고 어려운 일도 아니련만 그 일이 불가능해졌다. 제 터전을 잃은 눈보가가 살 곳은 어디에도 없다. 그건 북극곰 ‘눈보라’의 잘못은 아니다.

수많은 자연물 중에 인간도 있다. 사람이 다른 동식물들 삶에 막강한 영향을 미치는 사실은 자주 망각된다. 더 많이 차지하고 더 많이 누리고 더 많이 편해지기 위해서 하는 행위들은 단지 눈에 보이는 나무를 자르고 동물들을 잡아 우리에 넣고 바라보는 지경을 넘어섰다. 기후까지 변화하도록 사람들의 문명은 막강해져왔다. 날로 심해지는 폭염과 폭설같은 겉잡을 수 없는 현상들 앞에서 사람도 살던 터전을 잃게 되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애써 외면하지만 많은 과학자들은 해수면 상승을 경고한다. 적어도 지구상의 많은 땅들이 물에 잠길 것이라고 한다. 사람이 원인 제공자이다. 사람이 자연스러운 생태계를 망가뜨리고 있는 것이다. 그 벌에 먼저 직면해 있는 것이 동식물일 뿐.

쓰레기통을 뒤지는 곰은 반만 흰색으로 그려져 있다. 그 온전하지 못한 색깔은 어떻게 돌려놓아야 할까. 너무 늦지 않게 하자는 각성은 있어왔지만 대안이나 대책은 느리기만 하다. 제도적 사회적 전 지구적 차원에서의 대책은 그렇다고 해도 개인이 할 수 있는 일들은 더 구체적으로 실천해야 하겠다. 각자에게 맞는 방법과 찾을 수 있는 방법으로. 우리의 어린 것들이 북극곰 눈보라처럼 살만한 장소를 찾아 이리저리 절망스럽게 헤매지는 않아야겠다. 우리 부모세대가 자신들 욕망을 줄여 물질 풍부한 세상을 만들어줬다면 우리 세대는 물질의 사용을 줄여서 지구의 변화를 늦추는 좋은 자연을 물려줘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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