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지디제라티
연구소장

[충청매일] 세상의 모든 현상이 허깨비 같고/태어남과 죽음이 마치 번개와 같다/산과 물에 들어가고 나옴에 걸림이 없다/법성(法性)은 본래 비고 고요하여 나고 죽음에 얽매이지 않는다.

‘직지’ 하권 생사불이(生死不二)의 일부분이다. 지지난 달 어머님께서 오랜 병고로 시달리시다가 극락세계로 가신지 2달이 채 못 되었음에도 그리움이 불현 듯 생각 사록 눈물이 샘솟듯 쏟아진다. 향년 구순을 5일 남기시고 행여 소생하길 바랐으나 하늘도 무심하게 이승과의 인연을 끊고 뜨거운 불길을 지나 머나먼 길을 꽃바람이 앗아갔습니다. 나도 이순(耳順) 고개를 넘겼음에도 그 슬픔을 부르짖고 땅 치고 울며 뉘우친들 이제는 다시 뵈옵지 못함을 무엇하리.

선불교에서 화두를 들어 깨달음을 얻는다고 하나 도저히 어떻게 깨닫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어머님에 계시지 않는 그 자리가 공허함을 체험을 하니 그 아리고 사무치도록 보고 싶은 마음과 어머니라는 실체를 깨닫게 되는 순간이 아닌가 한다.

일찍이 고려말 백운경한, 태고보우와 같이 3걸의 한 분인 나옹혜근의 누님이 지었다는 어머니와의 이별에 대해 부운(浮雲)이란 선시에서, 삶이란 한 조각 구름이 이는 것/죽음도 한 조각 구름이 스러짐이라네/구름 자체는 본디 없었던 바/나고 죽고 오고 가는 것도 다르지 않다네. 라고 하고 인생의 덧없음을 말해주고 있다.   

이승에서 보이지 않는 영원한 저승세계 가신 어머님을 보고 싶어도 실제로 만져 볼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인공지능을 활용하면 생전에 남기긴 사진과 동영상으로 미니어처나 홀로그램을 복원한다면 마치 환생하신 듯 뵈올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에게 생명줄이었던 봉긋하게 솟아오른 젓가슴은 미이라처럼 말라 붙었고, 주름진 손등은 고목의 뿌리처럼 앙상하여 고된 세월의 흔적을 남기셨습니다. 그 곱고 인자하신 어머님의 모습은 어디에 가고 누구를 애타게 기다리셨는지 병상에서 그리도 고통스러워 하시면서도 자식을 보고 반가움에 눈가에 맺힌 여린 눈물은 차마 닦아드릴 수가 없었습니다. 마지막을 따스한 집으로 뫼시지 못하고 차디찬 병상에서조차 자식 도리를 지키지 못한 불효 자식을 용서하지 말아 주십시오. 그리고 어머님의 궂은 병수발과 하늘 길을 전별한 막내 여동생 영옥과 매제에게 경제적 심적으로 부담만 안겨 못해 한없이 죄스러움과 고마움을 전하고 싶습니다. 어머님! 이제 아버님과 함께 호젓이 함께 못다 누린 복을 누리시길 바라옵니다.   

멀리 있다가고 어머님을 보면 한 걸음에 달려들어 가슴에 파고 들면 미소 지으면 머리를 쓰다듬는 따사롭고 그윽한 손길은 언제나 느낄 수 있을런지요. 금잔화 꽃이 만개한 산책로를 거닐면서 이 세상에 계시지 않는 어머니의 모습과 자장가를 그리며 흐르는 시냇물 소리 속에 애닮픔을 흘려 보냅니다.

어머님 이제 편히 가십시오. 낳고 기른 깊은 은혜 하늘도 가이 없이만, 생전 아버님과 두 분이 삶의 기억과 흔적이 남아있는 곳에 유택을 마련했으니 끝내 영면하시길 손 모아 비옵니다. 백세시대에 다시 백세를 더 사신다 해도 자식의 마음은 오히려 만족치 못 할 일이온데, 가련한 자식을 위해 꿈에 넋이라도 밤마다 훨훨 날아오시길 바라마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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