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가

[충청매일] 청주 국립현대미술관을 찾았다. 청주를 떠나 있다 수십 년 만에 돌아왔으니 연초제조창이라고 해야 더 잘 알아듣는 세대다. 흰 건물과 창고, 우뚝 솟은 굴뚝에서 옛 연초제조창의 모습이 어렴풋하다. 현대식 건물 뒤편에 막사처럼 보이는 나지막한 동부창고가 보인다. 예전의 창고가 아닌 창조의 문화공간이란다. 저곳에 그 많은 연초를 보관했었다니.

내가 자라던 시골 마을에는 담배밭이 참 많았다. 집집마다 주로 담배 농사를 지었고 지붕이 높다란 담배 건조실이 내 눈엔 이층집처럼 퍽 근사해 보였다. 잎이 널따란 담배는 동네 사람들의 주 수입원이었겠지만 어린 내 눈엔 예쁘지도 먹을 수도 없는 담배밭이 지루할 뿐이었다.

부모님이 계신 청주 집에 다니러 왔을 때다. 안방 한구석엔 아버지를 위한 재떨이가 늘 준비되어 있었다. 몽당이 되어버린 꽁초가 이리저리 군드러져 있었고, 가끔 재떨이 언저리에는  기다랗게 어깨를 걸친 채 누워 있는 놈도 있었다. 내 팔보다 긴 곰방대에 말린 연초를 꼬깃꼬깃 구겨 넣는 할아버지가 떠올랐다. 입술이 일그러지도록 손가락에 온통 힘을 주시는 모습이 다섯 살배기 내 눈엔 퍽 힘이 드신 듯 보였다. 아버지가 두고 가신 저 하얗고 늘씬한 담배면 할아버지가 힘을 쓰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마침 약방에서 준 봉투가 있길래 나는 아버지의 꽁초를 차곡차곡 모아 담아서 할아버지께 갖다 드렸다. 동부창고에 보관하던 엽연초가 바로 할아버지 곰방대에 꼭꼭 눌려있던 그 연초였을 것이다.

대성동 우리 집에서 내덕동까지 걸어서 친구 집에 놀러 갔던 적이 있다. 긴 담장을 따라 한참을 걸어야 했는데 거대한 그 영역이 무엇을 하는 곳인지는 알지 못했다. 다만 연초제조창이라는 이름만 알 뿐 담장 안의 속살이 궁금했다.

드디어 5학년 때 그 긴 담벼락 안의 세상을 들여다볼 기회가 생겼다. 현장학습으로 연초제조창을 방문한 것이다. 수많은 권련이 컨베이어 롤러를 타고 미끄러지듯 줄지어 나왔다. 사람이 손 하나 까딱하지 않는데도 담뱃갑 속으로 착착 들어가는 모습을 보며 우리는 모두 신기해했다. 선생님께서는 설비의 자동화와 분업에 대해 설명을 해주셨다. 그때가 1970년대 한참 경제개발이 붐을 일으키던 시기였으니 새마을 운동으로 우리도 한번 잘살아보자고 외치던 때였다. 소매를 걷어붙인 아버지의 손가락엔 늘 담배가 끼워져 있었다. 아버지의 담배가 이곳에서 만들어진다는 것도 견학 후 처음 알았다.

주차장에서 나와 미술관 뒤편에 있는 굴뚝을 올려다본다. 푸른 하늘을 뚫을 듯 높이 솟은 모습이 시절을 지켜내려는 외로운 전사 같다. 가는 세월이 아쉽다고는 하나 이미 과거가 되어버린 연초제조창에는 새로운 희망이 자라고 있다. 동화속 키다리 아저씨네 담장만큼이나 높아 보이던 그곳을 이제 마음 놓고 다닐 수 있게 되었다. 전국 최대규모의 담배공장 연초제조창에서 꿈을 가꾸던 옛 언니들 대신 지금은 2030 세대의 문화 아지트가 되어 젊은이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담배 연기 대신 이제 문화 산업의 열기가 저 굴뚝을 타고 널리 퍼져가리라. 서둘러 미술관 안으로 발길을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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