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충북 청주에서 성폭행과 학대 피해를 입은 여중생 2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 발생하면서 사회적 공분이 확산하고 있다. 특히 이 학생들은 숨지기 전 경찰과 전문 상담기관에 피해 사실을 알렸지만 별 도움을 받지 못하고 비극적인 선택을 했다는 점에서 부실한 사회적 안전망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성폭행과 학대 피해로 경찰 조사를 받은 것으로 알려진 두 여학생이 청주의 한 아파트에서 떨어져 숨진 것은 지난 12일이다. 이들의 가해자로 지목된 인물은 숨진 학생 두 명 중 한 명의 의붓아버지다. 수개월 자신의 집에 놀러 온 의붓딸의 친구를 성폭행하고, 의붓딸도 학대한 혐의를 받고 있다.

피해 학생들은 지난 1월부터 전문 상담기관에서 심리 치료를 받았고, 3월에는 교내 위(Wee)클래스 상담교사와 면담도 진행했다. 학교와 교육청 등에는 학교폭력, 따돌림 등 어려움을 겪는 위기 학생을 대상으로 교육·치유·적응을 도와주는 상담제도가 있지만 모두 제 역할을 못했다.

이들의 피해 조사가 시작된 것은 피해 학생의 부모가 지난 2월 경찰에 고소장을 내면서부터다. 경찰은 수사 후 의붓아버지에 대해 체포영장과 구속영장을 수차례 신청했지만, 번번이 검찰에서 기각됐다.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 증거, 주변인 진술 등 범죄 소명자료가 부족하다는 이유였다.

3개월 가까이 경찰 수사와 전문기관의 상담이 이어지면서도 가해자와 피해자의 분리는 없었다. 열다섯 감수성이 예민한 여중생들이 얼마나 불안에 떨었을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심적 고통을 이기지 못한 아이들이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은 결국 어른들의 소극적인 대처에서 비롯됐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시민단체는 이번 사건이 현 법 제도가 부른 ‘사회적 타살’이라고 지적했다. 충북지역 교육·여성단체는 “성폭력과 아동학대의 경우 가해자와 피해자의 조기 분리가 기본임에도 수사기관이나 교육기관이 제대로 지원하지 못했다”며 “사건 발생 시 경찰·교육청·아동보호전문기관이 공조하는 대응체계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정의당 이은주 의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근년 들어 초·중·고 학생 자살비율이 늘어나고 있다. 전국 학생 10만명당 자살 추이를 보면 2015년 1.53명까지 감소했던 수치가 점차 증가세로 돌아서 2018년 2.58명, 2020년 2.75명까지 치솟았다. 최근 10년 새 가장 높은 기록이다. 학생들의 정신건강에 경각심을 갖고 좀 더 치밀한 대책을 세워야 한다.

지난 14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두 명의 중학생을 극단적 선택으로 내몬 계부를 엄중 수사해 처벌해주세요’라는 제목의 청원글은 19일까지 4만6천명이 넘게 동의했다. 국민적 공감을 얻고는 있지만 너무 늦었다.

이제라도 또 다른 아이들이 자살위기에 방치되고 있진 않은지 돌아봐야 한다. 청소년의 위기는 사회적 위기다. 불안정한 심리상태에 놓여있는 청소년들을 위한 심리상담이나 진단, 조치 등에 대한 현실적인 지원제도 개선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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