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지은 청주시립도서관 사서]어느덧 나는 훌쩍 자라버린 사춘기 아이들의 엄마가 되었고 그렇게 하루하루 바쁘게 살아가고 있다. 너무 작아 안기조차 조심스러웠던 신생아 시절부터 지금은 어느새 몸도 마음도 엄마보다 훌쩍 자라버린 아이의 엄마가 된 그 시간 동안, 지금껏 난 온전히 일관성 있는 사랑으로 아이들을 대해왔는지, 그리고 가족, 더 나아가 타인과의 관계 맺음 안에서 슬픔에 공감할 줄 알고 감정으로 교류하였는지... 책을 읽는 내내 스스로에게 질문해 보게 된다.

한국형 영어덜트 소설의 시작을 알리는 작품으로 평해진 손원평 작가의 ‘아몬드’는 주인공 윤재와 등장인물들, 타인과의 관계 맺음 안에서 만남과 어긋남이 발생하게 되고 그것을 계기로 성장해 가는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윤재는 삶에 대처하기 유달리 힘들게 태어난 소년이다. 감정이 고장 난,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감정표현불능증’ 소년의 특별하고 애틋한 성장 이야기이다.

윤재는 다른 사람들의 행동과 말에서 감정을 읽어 내지 못하고 두려움과 화남조차도 잘 느끼지 못하고 살아가며 가장 쉬운 듯, 가장 어려운 ‘평범하게’ 살아가려고 고군분투 중이다.

어느 날 그런 소년의 가장 버팀목이었던 엄마와 외할머니에게 비극적인 사건을 맞이하게 되면서 이 세상에 홀로 남게 된다. 엄마와 할머니의 사고 앞에서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던 윤재의 이야기가 퍼져나가 이제 학교 안에서도 공포, 두려움, 분노조차 느끼지 못하는 ‘괴물’ 같은 존재로 낙인찍힌다. 가족과 그렇게 홀로서기를 하게 된 소년에게 이제 주변의 새로운 인연이 다가오게 된다.

윤재를 돕고 싶어 하는 ‘심박사’ 그는 지위와 명예만 쫓아 살다가 아내의 죽음 후에야 자신이 얼마나 가족에게 무관심했는지 깨닫고 자신의 도움이 필요한 윤재의 삶 속에 들어간다. 심박사는 윤재를 믿고 기다려주며 상대방을 이해해주는 모습을 통해 본인의 삶을 반성해 나간다.

그리고 어두운 상처를 간직한 아이 ‘곤이’, 가족을 잃고 시설을 떠돌아 결국 범죄자의 낙인이 찍힌 곤이는 자신의 불행을 불량한 사람들과 관계 맺음 함으로써 더욱 불행속으로 들어가고 있다.

감정이 없는 윤재와 자신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해서는 더욱더 강한 존재가 되어야 한다고 믿는 문제아로 낙인찍힌 곤이 이 둘은 서서히 친구가 되면서 타인을 이해하고 공감하게 된다.

두 소년들이 타인과의 관계 맺음과 성장 과정에서 겉보기에는 괴물 같아 보일지라도 그 내면에는 언제나 괴물이 되지 않기 위한 눈물겨운 분투가 숨어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공선옥 소설가에 따르면 “어쩌면 현대라는 사회가 집단 ‘감정표현불능증’을 앓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상실을 애도할 시간, 감정을 보듬을 여유를 잃어버린 채 살고있는 우리들은 윤재를 응원하면서 자신의 마음 또한 되돌아볼 기회를 얻을 것이다”라고 말한다.

괴물이라고 일컫는 윤재 곁에는 자신에게 무한 사랑을 주었던 엄마와 할머니, 자신에게 다가와 주는 새로운 인물들이 있었다. 그들과 관계를 맺고 성장하며 자신의 한계, 감정표현 불능증을 깨며 가장 이루기 어려운 가치인 평범함을 향해 고군분투 중인 윤재가 어쩌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을 역설적으로 담아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요즘 인터넷을 들여다보면 흉흉한 뉴스를 접하게 되고 사회가 각박하게만 느껴진다. 이 또한 결국 사랑이 결핍된 공감 불능 사회의 이면을 여실히 보여 주는 것만 같다.

이 세상에서 누구도 홀로는 완벽할 수 없다. 현대사회는 더욱이 그러하다. 내가 아닌 타인에 대해 관대하게 이해하고 상상해보는 것은 공감의 씨앗이라고 한다. 자신과 가장 가까운 가족과 그리고 타인과의 관계 맺음 안에서 그 공감의 씨앗을 싹틔워 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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