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명
온깍지활쏘기학교 교두

 

 

[충청매일] 문화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이 획일화입니다. 획일화는 편의주의와 열등감의 결과입니다. 우선 내가 남과 달라 보이기 싫은 심리에서 남들을 따라 하는 것이고, 또 다른 사람과 호칭을 달리 쓰면 불편하니까 복잡한 것을 싫어한 심리가 간편함을 택한 결과입니다. 활터에서 일어나는 이러한 심리로 인해 정말 많은 문화와 전통이 사라졌습니다. 그 증거가 용어에서도 나타납니다.

제가 전국을 돌며 조사해보니, 활터 대표를 가리키는 말이 몇 가지 있었습니다. 중부 이북은 주로 사두라는 말을 썼고, 호남과 영남에서는 사수(射首)라는 말을 쓰는 곳이 많았습니다. 또 전라북도 전주 천양정에서는 사장(射長)이라는 말을 쓰기도 했습니다. 또 호남7정이 있는 전라도 일대에서는 사백(射伯)이라는 말도 썼습니다. 적어도 활터 대표를 가리키는 말은 4가지가 확인된 셈입니다.(‘활쏘기의 어제와 오늘’) 지금은 어떨까요?

전국이 사두로 획일화되었습니다. 심지어는 이 획일화가 진행 중이기도 합니다. 정읍 필야정에서는 사장이라는 말을 쓰다가 2000년도에 호칭을 사두로 바꿨습니다.(‘국궁논문집’) 현재 사장이라는 말을 쓰는 곳은 천양정이 유일합니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천양정입니다. 천양정은 이런 호칭에 대해 굉장한 자부심을 보입니다. 필야정이 전국 통일인 사두를 따라간 것과는 대비되는 결과입니다. 어느 정에서는 콤플렉스로 작용하는 호칭이 또 다른 정에서는 자부심으로 승화된 사례를 볼 수 있습니다.

사백이라는 호칭을 쓰는 곳은 강경 덕유정과 군산 진남정입니다. 사수라는 호칭은 사두만큼이나 광범위하게 쓰이던 이름이었는데, 지금은 다 사라지고 장호원의 뚝방터와 청주의 장수바위터, 그리고 평택의 느새터(관평정)에만 남아있습니다.

이렇게 된 것은 1970년대 무렵에 뜬금없이 사두 명칭 통일 운동 때문입니다.

협회에서 활터 대표 모이면 사람마다 호칭이 다 다른 것입니다. 사두 모임은 주로 대회 직전 이른 아침이거나 협회 총회 같은 때 이루어집니다.

전라북도에서 사두 모임을 개최하면 활터 대표 명칭이 넷이나 됩니다. 사두, 사수, 사장, 사백. 그래서 회의를 하면 어느 사람에게는 사수라고 해야 하고, 어느 사람에게는 사백이라고 해야 하고……. 이런 번거로운 일이 생기는 겁니다. 이를 참지 못한 사람이 제안했겠지요. 명칭을 통일하자고.

문제는 이런 어리석은 제안이 선뜻 받아들여졌고, 활터에서 그것을 실천에 옮기는 일이 발생했다는 것입니다.

편의주의와 열등감이 불러온 대참사입니다. 문화의 특징은 다양성입니다. 이 다양성이 죽는 순간 문화는 껍데기만 남습니다. 그 증거가 바로 활터 대표 호칭 통일 운동입니다.

이 편의주의는 어디서 오는 걸까요? 그것은 효율성에서 옵니다. 대회를 치르기 위한 효율성과 한가지 목적을 향해 전력 질주하는 시대의 광기에서 옵니다. 1970년대는 그런 시대였습니다. 그 광기는 지금도 활터에 소용돌이치는 중입니다. 활은 사격이라는 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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