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청주우편집중국장
수필가

[충청매일] ‘사람은 곱게 늙어야 한다’라는 표현은 선친께서 생전에 자주했던 이야기인데 당시는 그저 하는 말로 흘려들었으나 세월이 흐른 요즘 은 그 속에 깊은 뜻이 담긴 유훈이라는 해석을 하고 있다.

‘곱게 늙어야 한다’라고 하는 평범한 진리의 말을 초등학교밖에 배우지 못한 시골 촌부가 자신의 경험에서 터득한 지식을 토대로 인생철학으로 표현했다는 생각에 더욱 의미 있게 받아드리고 싶다.

‘곱게 늙다’ 뜻을 조명해보면 누구나 늙어가는 과정은 거스를 수 없는 자연의 순리인데 가는 도중인 인생을 바르게 살라는 표현이다. ‘곱다’라는 의미는 여러 가지가 있으나 여기서의 곱다라는 뜻은 얼굴뿐만 아니라 마음이 곱고 바르며 법과 도덕적으로 이탈하지 말고 세상을 바로 살라는 취지로 이해하고 있다.

선친은 일제강점기인 1920년대 시골에서 태어나 슬하에 8남매를 두고 우리나라 굴곡의 역사와 함께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았다. 농사를 기본으로 하고 소전에 다니면서 중개도 하고 장사를 하며 밤길을 매일같이 걷다시피 한평생을 보냈다. 밤길도중 강도도 만나고 짐승의 공격도 받고 장마에 휩쓸려 몸에 지니고 있던 돈을 몽땅 다 물에 날리고 몸만 겨우 구사일생으로 살았다고 어머니께서 자주 들려주었는데 상상할 수 없는 삶을 살았다. 그렇지만 자식들 먹이고 어떻게든 가르친다는 신념으로 본인 일생을 걸었다고 하니 자식으로서 존경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러다 노년에 어머니가 11년 먼저 떠나고 홀로 시골에서 지내면서 오늘 주제인 ‘사람은 곱게 늙어야 한다’는 이야기는 그 시절 몸소 체험하며 터득한  수양의 산물 아닌가 추측하고 있다. 노령에 혼자 지내는 것이 얼마나 외롭고 쓸쓸 할까는 경험해보지 않고는 쉽게 말하거나 상상하기가 어렵다.

작고한 후에 보니 통장에 돈도 많이 있었는데 그 정도면 노후를 즐기며 살았어도 충분했으련만 오로지 자식들 앞날 걱정에 쓰지 않고 외로이 홀로 보낸 인생이 안쓰럽고 죄송하다. 그 돈은 형제들 공금으로 사용하며 자주 만나고 손자들 결혼 시 할아버지 할머니 명의로 잘살라는 당부와 함께 축의금으로 주고 있다. 평소 건강관리도 시골에서 나름대로 잘해서 그 당시 87세까지 장수하였고 운명하기 전날까지도 밖에 돌아다니고 밤에는 여섯째인 필자와 도란도란 밤새 이야기하고 다음날 임종하기 두시간전 목욕하고 30분전 큰아들하고 전화통화하고 험난한 굴곡의 생을 마감했다.

소전에 다니며 사람상대를 많이 하는 관계로 술은 필수였는데 그 당시도 선친은 하루 마시면 다음날은 절대로 안한다는 자신만의 룰을 만들고 실천하여 ‘오늘은 술 안 마시는 날’이다 하면 인근 주민이 다 알고 권하지 않았을 정도로 생활력이 강했다.

언변도 좋고 위트가 있어 주위사람들에게 인기도 많았고 대중을 사로잡는 매력과 명언을 남기어 지금도 회자되고 있는 말이 많다. 전쟁 시에는 밖에 나간사이 인민군들이 집에서 키우던 개를 잡아갔다는 이야기를 들고는 곧장 찾아가 달변가 수완을 발휘하여 고기를  일부 얻어다가 당신 어머니를 해드렸다는 일화는 전설로 남아있다.

‘사람은 곱게 늙어야 한다.’라는 이야기는 여러 가지 의미를 담고 있는 인생철학의 함축적 표현이란 생각에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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