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꿈세상 정철어학원 대표

[충청매일] 어깨가 떡 벌어지고 피부가 번지르르하니 자태가 빼어나다. 마음에 쏙 든다. 나는 첫눈에 반했다. 우리는 그렇게 만나 20년이 지났다. 그는 내가 열정을 쏟아 일을 하는 내내 나와 함께 했다. 전국을 누비며, 밤늦도록 골목골목을 헤매기도 하고 사고로 위험한 순간 내 생명을 구하기도 했다. 이렇게 생사고락을 함께한 친구를 이제 그만 놓아주라고 한다. 가족들은 난테 몰래 ‘이제 바꿔!’라고 나에게 속삭인다. 그는 내 승용차 ‘로시난테’이다.           

비와 바람을 거슬러 라만차의 풍차를 향해서 달리는 돈키호테의 ‘로시난테’처럼 우리는 떨칠 수 없는 꿈을 향해 함께 달렸다. 지금도 늙고 병든 그와 난 둘이서 제자리걸음 달리기를 계속하고 있다. 그런 그를 보고 가족들은 자주 고장도 나고 낙후되어 모양도 빠진다고 폐차를 강요한다. 승용차의 기능으로 판단하면 오래되고 낡은 만큼 효율적 기능을 충분히 다 했다는데 동의한다. 하지만 나에게 ‘로시난테’는 승용차를 넘어 힘든 삶을 함께 헤쳐 나온 동반자이다. 장거리 출장으로 지칠 때에는 쉼터가 되어 주기도 하고 위험한 사고에서 생명을 구해준 때도 있었다. 나에게 ‘로시난테’의 본질적 가치는 승용차를 넘어선다.

나는 ‘서강석’이다. 서강석은 누구인가. 어릴 적 나는 누구였고 지금의 나는 누구인가. 친구로서의 서강석도 있고 학원장 서강석도 있다. 또 사회인으로서 서강석도 있고 가장(家長) 서강석도 있다. 나로서의 나는 누구인가.

어린 시절에는 누군가와 싸우게 되었을 때 상대를 때리면 그가 아플까봐 때리지 못하고 맞고 마는 바보 같은 아이였고, 어떤 때는 힘센 아이에게도 종일 맞으며 끝까지 달려들어 기어코 무릎을 꿇리는 독한 아이였다. 대체로는 착한 아이였다. 어른이 된 지금은 정이 깊은 친구, 바람직한 교육관을 갖춘 원장, 많은 사람이 같이 행복할 수 있는 삶을 고민하는 사회인, 성실하고 자상한 가장이다. 꽤 괜찮은 어른으로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생각의 내가 나일까? 나는 진짜 꽤 괜찮은 나일까? 나의 본질은 무엇인가? 나도 나를 모르겠다.

노자의 도덕경은 도(道)와 명(名)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도가도비상도 (道可道非常道)

명가명비상명 (名可名非常名)

어떤 이는 이를 “도를 도라고 할 수도 있지만, 언제나 그 이름이 도인 것은 아니니라. 어떤 이름으로 이름을 붙일 수는 있지만, 언제나 그 이름이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 않겠느뇨”라고 풀이 한다.

이를 보면 도道라 하더라도 변하지 않는 영원한 법칙이 될 수는 없고, 어떤 대상에 대한 정의도 영원히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중요한 가치는 본질이다. 하지만 본질은 오묘하다. 쉽지 않다.

나의 본질은 다양하고 변화하여 종잡을 수 없다. 순수한 마음이 있는가 하면 어느 틈에 욕망이 이글이글 마음 한 켠에 도사리고 있고, 따듯한 정이 깊은가 하면 냉혹한 차가움이 가슴을 얼리기도 한다. 순수한 교육만 생각하자 하는데도 타산이란 녀석이 어느새 앞서가기도 한다. 참 묘하다. 나도 내가 쉽지 않다.

도(道)와 정의도 변하고 본질은 오묘하다.

잠재된 나의 본질은 알 수도 없고 알 필요도 없다. 존재할 뿐이다. 다만 내가 실천한 만큼 그 만큼만 본질적 가치로 의미가 있다.

‘로시난테’의 본질적 가치가 승용차의 기능적 가치를 초월 하듯, 후에 남겨진 내 삶의 흔적이 가치가 있고 의미 있는 본질의 흔적이 되도록 나를 실천하며 한발 한발 나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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