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테라피 강사

[충청매일] 언니와 동생이 있다. 언니는 언제나 동생을 보살펴 준다. 언니는 늘 동생을 돌본다. 줄 넘기를 하면서도 동생을 지켜보고 자전거를 탈 때도 앞에 태우고 학교에 갈 때도 꼭 잡고 간다. 동생은 언니가 세상에서 못 하는 일은 하나도 없다고 믿는다. 놀다가 동생이 울면, 달래주고, 감싸 안고 코도 풀어준다. 언니는 척척박사 같다. 동생은 늘 언니가 시키는 대로 했고 언니가 모르는 건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던 어느 날 동생은 언니의 잔소리가 듣기 싫어졌고 혼자 있고 싶어 언니의 명을 거역하고 몰래 문을 나선다. 뒤뜰을 지나 들판을 걸어 꽃밭에 웅크리고 앉아 애타게 동생을 찾는 언니의 목소리를 듣고도 모른 척한다. 여기저기 동생을 찾아 헤매는 언니. 한참이 지나 하늘을 쳐다보자 쥬스와 과자가 먹고 싶어지고 동화책을 읽어준다던 언니의 말이 떠오른다. 언니가 늘 하던 잔소리도 떠오른다. 지금 그런 잔소리 하는 언니는 없다. 데이지 꽃이 바람에 흔들리고 벌 소리만 윙윙거린다.

언니의 목소리가 다시 절박하게 들려오며 동생의 옆까지 와서는 털썩 주저앉아 급기야는 울음을 터뜨린다. 동생이 그랬던 것처럼 엉엉 울고 있다. 동생이 울면, 달래주고 안아주고 손수건으로 코도 풀어주던 언니였는데 언니는 혼자서 엉엉 운다. 동생은 아무것도 모르고 울고 있는 언니에게 살며시 다가가 어깨를 감싸 안는다. 그리고는 손수건을 내밀어 코를 풀어준다. 언니가 자기에게 했던 그대로.

언니는 동생이 하라는 대로 하며 둘은 마주 보고 웃는다. 이제 걱정하지 말라며 언니의 손을 이끌고 자매는 집으로 향한다.

1966년에 샬롯 졸로토와 마사 알렉산더가 엮은 ‘우리 언니’란 그림책인데 섬세하고 아름다운 그림과 굵직한 주제는 아직도 가슴 뭉클한 감동을 주는 책으로 전해진다. 자매의 이야기라서일까. 작품 전체에서 풍겨오는 느낌이 어린 시절의 아스라한 추억을 떠올리게 하고 아름다운 그림과 여성스러운 섬세함이 잊었던 자매의 의미를 일깨워 준다.

여러 남매를 키우면서 늘 할 일이 많던 엄마를 대신해 동생들을 돌보던 손위 형제의 애환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아직도 엄마가 그리워 언니를 찾으면 올망졸망 따라오는 보따리들, 보자기가 비닐로 바뀐 것 말고는 엄마의 봉송 그대로다. 고단하고 지난했던 시간들이 그 의무 아닌 의무에서 멀어질 때도 되었건만 이젠 언니도 나이들은 노인이란 걸 깨닫게 된다. 얼마 남지 않은 인생길에서 무엇이 언니의 지난 세월을 의미 있게 하는 것일까? 엄마처럼 황망히 보낼 수는 없다고, 그걸 나이가 들면서 깨닫게 되지만 동생은 어쩔 수 없이 운명적인 동생인가 보다. 끝까지 언니는 다 할 줄 알아야 하고, 다 양보해야 하고 동생들에게 주기만 하는 언니이길 바라는 선천적 이기심이 존재한다. 나이 들어 보니 너무도 인간적인 언니의 본 모습을 알고는 희비가 교차한다. 언니도 누군가의 사랑이 필요한 존재이며 이제는 내가 돌보아야 할 나약한 어린 부분이 있다는 것, 사랑은 아래로 흘러간다지만 꼭 그래야 하는 건 아니라는 것.

당연히 그러한 것들이란 세상이 많지 않다는 것까지 생각한다면 어릴 적 수고한 언니, 오빠, 누나, 형들은 나이 들면서 좀 대우를 받으며 살 수 있는 구조에 놓이면 좋겠다, 형제자매들 사이의 은밀한 추억들을 꺼내 회상하며 서로 위안을 주고받는 시간들이 펼쳐지면 좋겠다. 어린 시절 절실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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