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명 시인]그런데 여기서 제가 방금 띄어쓰기를 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러자면 어디서 띄어쓰기를 해야 하는지 알아야 합니다. 즉 띄어쓰기에 대한 '앎'이 있어야 합니다. 이 앎은 그냥 생기지 않습니다. 공부해야 합니다. 어느 정도 공부해야 할까요? 엄청 많이 해야 합니다. 그리고 대한민국 국민중에서 이 띄어쓰기를 정확히 수행할 능력이 있는 사람은 몇 백 명 정도에 지나지 않을 겁니다. 그 만큼 띄어쓰기는 우리에게 어렵습니다. 아닌가요? 아니라면 천만 다행입니다만, ‘나는 띄어쓰기를 모두 잘 할 수 있다’고 선언할 분이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 중에서는 없을 것이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국어교사로 30년을 지낸 저부터가 가끔 띄어쓰기가 알쏭달쏭하고 또 틀리기도 하거든요. 국어시간에 많이 시험 치렀던 다음 문장의 차이를 보시지요.

나는 너만큼 키가 큰 편이다.

나는 할 만큼 나름대로 다 했다.

<만큼>의 성격은 그 모양에 있지 않습니다. 이것이 문장의 어느 곳에 자리 잡느냐에 따라서 품사가 바뀝니다. 위의 <만큼>은 토씨이고, 밑의 <만큼>은 이름씨(의존명사)입니다.? 아마 이 때문에 국어시간에 골머리깨나 앓았고, 또 시험 보다가 많이 틀렸을 것입니다. 이런 골치아픈 일은 교착어인 우리말에서 굴절어에 적합한 띄어쓰기를 택한 결과로 인하여 일어난 일입니다.

물론 띄어쓰기를 하면 뜻이 확 들어오고 좋습니다. 그러나 그 띄어쓰기를 글을 쓸 때마다 신경써야 한다면 한 번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띄어쓰기를 하지 않을 때 생기는 '마음 편함'과 띄어쓰기를 할 때의 '조심스러움' 중에서 어느 쪽이 우리에게 더 편한지를 말입니다. 오늘날의 맞춤법은 '마음 편함'보다 '조심스러움'을 택한 것입니다. 그래서 글 한 글자 한 글자를 쓸 때마다 압정이 뿌려진 방바닥을 디뎌야 하는, 살얼음 밟듯이 해야 하는 상황을 날마다 마주하게 된 것입니다.

저에게 선택권이 주어진다면 '조심스러움'보다 '마음 편함'을 택했을 것 같습니다. 뜻을 전달하는 기능을 지닌 글 따위를 쓰는 데 날마다 살얼음 밟듯이 해야겠어요? 저는 몹시 불편합니다. 하지만 저에게는 그런 선택권이 없습니다. 그래서 이 순간에도 띄어쓰기와 맞춤법에 맞는지 어떤지를 걱정하면서 한 문장 한 글자를 써나갑니다. 저의 괴로움을 누구에게 하소연해야 할까요? 저는 그냥 옛날처럼 띄어쓰기 없이 주욱 이어썼으면 좋겠습니다.

띄어쓰기를 설명할 때마다 인용되는 문장이 있습니다. <아버지가방에들어가신다.>는 말입니다. 이걸 읽고 아버지가 가방에 들어가신다고 생각할 사람이 과연 있을까요? 이런 설명은 띄어쓰기의 잇점을 주장하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만약에 설명대로 아버지가 가방에 들어가실까봐 걱정이 된다면 뜻을 헛갈리게 만드는 토씨인 <가>를 생략하거나 헛걸리지 않는 다른말로 쓰면 됩니다. 이렇게 말이죠.

<아버지방에들어가신다.>

<아버지께서방에들어가신다.>

이러면 뭐가 문제가 된단 말입니까? 띄어쓰기할 때 이점이 있고, 안 할 때의 이점이 있습니다. 어느 쪽이 더 이로우냐가 선택의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문자가 반드시 뜻을 정확하게 드러내야 하며, 그러자면 어떤 희생도 감수해야 한다고 믿는 것은, 삶의 고단함을 몰라서 하는 소리입니다. 그따위 글자는 살아가는 사람이 편하게 하려고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 편함을 넘어선 '앎'은 긁어부스럼입니다.

'긁어부스럼'은 띄어써야 할까요? 이어써야 할까요? 바로 이런 고민이 띄어쓰기의 맹점을 또렷이 보여주는 일입니다. 답은 국어선생님께 여쭤보시기 바랍니다. 아니면 네이버 지식인에게 물어보시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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