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며칠 뒤, 한밤중에 미향이가 몸종을 데리고 은밀하게 집을 나서는 모습이 보였다. 두 사람은 청풍의 관문인 팔영루를 지나 읍리나루로 갔다. 나루터에는 거룻배 한 척이 두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거룻배는 두 사람을 태우고 북진나루를 지나 강 상류로 올라갔다. 장선협곡 사이로 이지러진 그믐달이 막 떠오르며 희미하게 강물을 비췄다.

“사공, 배를 저어기 억새 숲이 보이는 강가에 대주시오.”

미향이가 사공에게 말했다. 

거룻배가 닿은 곳은 부엉이굴이 있는 엉성벼루 밑이었다.

“서방님-.”

동굴 앞에 다다른 미향이가 안쪽을 향해 나직하게 불렀다. 한참 후 누군가가 동굴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서방님, 고생이 심하시옵니다.”

미향이가 최풍원의 품에 안기며 애처로운 어조로 말했다.

“나 때문에 자네 고생이 더 작심하네.”

“서방님, 지금이라도 관아로 찾아가 안핵사께 모든 걸 털어놓으면 어떨까요?”

“이미 늦었다. 나는 이미 어느 쪽으로든 갈 수 없는 형편이다. 농민봉기에 자금을 대주고, 부사와 결탁해 구휼미 고패에 사전주조까지 했으니 안핵사가 용서하겠느냐? 조 부사도 지금쯤 내가 안핵사에게 잡혀 모든 것이 밝혀질까 두려워 밤잠도 편히 자지 못하고 있을 터인데 그런 조 부사가 나를 반기겠느냐?”

“이 밤중에 험한 길을 떠난다 하시니 소첩도 불안해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미향이가 더욱 최풍원의 품속을 파고들며 말했다.

“배는 준비가 되었느냐?”

최풍원이 미향이를 품에서 떼어내며 물었다.

“예, 서방님!”

“그럼 어서 내려가자!”

최풍원의 재촉에 미향이도 마지못해 거룻배가 정박해 있는 엉성벼루 밑 강가로 내려갔다.

“서방님, 일단 황두리까지는 이 배를 타고 가세요. 북진나루는 사람들 눈이 많아 위험해서 황두리에 배를 약조해 놓았습니다.”

황두리나루는 북진나루에서 하류 쪽으로 한 마장쯤 떨어진 선바위가 있는 마을이었다.

거룻배가 세 사람을 태우고 올라왔던 길을 되돌아 내려갔다. 사공이 젓는 노에서 목쉰 기러기 소리가 불규칙하게 났다. 이런 밤중에 배를 부리는 정도의 사공이라면 노가 장단처럼 부드럽게 들리는 것이 상례였다. 최풍원이 사공을 유심히 살폈다. 달빛이 희미하기는 했지만 예전에 북진 근방에서 본 적이 없는 낯선 얼굴이었다.

“사공, 뱃머리를 틀어 읍리나루에 두 사람을 내려주게!”

최풍원이 사공에게 말했다.

“서방님을 황석나루까지 모셔다 드리겠습니다!”

미향이가 황두리나루까지 동행을 하겠다고 나섰다.

“아니다! 그만 여기서 헤어지는 것이 좋겠구나!”

최풍원이 매정하게 미향이의 말을 잘랐다.

“서방님!”

미향이가 최풍원에게 안겼다. 미향이 얼굴은 온통 눈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두 사람은 포옹을 한 채 한참동안 그렇게 움직일 줄을 몰랐다.

“어서 내리거라!”

거룻배가 읍리나루에 닫자 최풍원이 재촉했다.

“서방님, 속히 돌아오셔야 해요.”

미향이가 배에서 내리면서도 자꾸만 뒤를 돌아다보았다. 최풍원이 그런 미향이의 모습을 안타깝게 바라보았다. 두 사람을 읍리나루에 내려놓고 거룻배가 뱃머리를 돌려 다시 강심으로 나갔다. 손을 흔드는 미향이가 어둠 속으로 사라질 때까지 최풍원은 뱃전에 그렇게 서 있었다. 거룻배가 목쉰 기러기 소리를 내며 강심에 닿았을 때 뱃머리를 황두리가 있는 하류 쪽과는 반대인 상류 쪽으로 틀었다. 배가 다시 내려왔던 강물을 거슬러 올라갔다. 순간 최풍원은 머릿속을 번뜩 스쳐가는 전율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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