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최풍원은 북진여각의 모든 정리를 봉화수에게 맡겨버리고 나자 모든 것이 허허로웠다. 어려서부터 장바닥을 뒹굴며 평생을 장꾼들과 풍찬노숙하며 살아온 흔적이 북진여각이었다. 사람들은 최 부자처럼 하루만 살아봐도 원이 없겠다는 말을 달고 살았다. 하지만 최풍원은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처럼 하루라도 살아봤으면 하는 것이 한이었다. 그것은 최풍원이 평생 품고 산 응어리였다. 부모님 모시고 형제들과 아옹다옹하며 오글오글하게 자식들을 낳아 사는 사람들을 보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그런 모습을 보고만 있어도 절로 입가에 웃음이 지어졌다. 한편으로는 어린 시절이 떠올라 가슴이 미어지기도 했다. 아버지의 탐학으로 고향 도화동을 쫓기듯 떠나 갖은 고생을 하다 돌아가신 할머니와 어머니, 동생 보연이를 생각하면 많은 재산도 허깨비에 불과했다. 북진여각을 정리하고 나자 평생 일한 자신에게는 아무것도 남는 것이 없었다. 그렇다고 주변에 기댈 가족 하나 없었다. 평생을 바쁘게 움직였지만 아무것도 한 일이 없었다. 온몸에 맥이 빠졌다. 최풍원은 청풍 읍성의 미향이 집으로 건너갔다. 세상에서 유일하게 기댈 수 있는 사람이 미향이었다. 최풍원은 미향의 집에서 평생 처

음으로 그렇게 여러 날을 죽은 듯 누워 몸살을 앓았다.

최풍원이 긴 몸살 끝에 자리를 털고 일어났을 때 북진여각의 물목을 갈무리하는 수천이가 미향이네 집으로 찾아왔다.

“대행수 어른! 요즘 여각 안팎에 낯선 자들이 배회를 합니다요.”

수천이가 걱정되어 말했다.

“자네도 많이 늙었구만.”

최풍원은 수천이의 걱정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딴소리를 했다.

“왜 그런 말씀을?”

수천이가 의아해서 물었다.

“자네도 그동안 내 밑에서 고생 많이 했네.”

“벌써 며칠 전부터 여각 주변에 수상쩍은 사람들이 자주 눈에 띕니다요.”

“으흠.”

그제야 최풍원이 수천이 말에 반응을 보였다.

최풍원은 미향이로부터 청풍부사 조관재가 자신을 잡으려고 혈안이 되어있다는 소식을 이미 들어서 알고 있었다. 조 부사가 자신을 찾는 이유도 잘 알고 있었다. 안핵사에게 잡히든 조 부사에게 잡히든 자신이 다시 예전처럼 살 수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북진여각이 정리되는대로 자네도 화수와 함께 삼개로 내려가 뒤를 돌봐주게! 부탁하네!”

“대행수 어른! 분위기가 심상찮으니 북진으로 오지 마시고 잠시 몸을 피하고 계시면 제가 기별을 하겠습니다요.”

“알겠네.”

최풍원 역시 시시각각으로 자신에게 닥쳐오는 위기감을 느끼고 있었다. 이미 마음의 다짐은 하고 있었지만 어느 쪽이든 지금 자신이 관아로 잡혀가게 되면 북진여각을 정리하는 데 걸림돌이 될 것이 분명했다. 집주인이 관아에 붙들려갔는 데 죄인의 재산을 사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정신 나간 사람일 것이었다. 최풍원은 봉화수가 북진여각을 처분할 때까지라도 은신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수천이가 북진으로 돌아가고 최풍원은 미향이를 불렀다.

“미향아, 아무래도 다른 곳으로 옮겨야겠다. 북진여각에 내가 없음을 알아냈다면 곧 이곳으로도 찾아올 것이 아니겠느냐?”

“서방님, 그게 좋겠습니다.”

더는 지체할 수 없다고 느낀 최풍원이 당부 말을 남기고 그날 밤중으로 미향이 집을 떠나 황급하게 몸을 감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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