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

[충청매일] 춘추전국시대 제나라의 명재상으로 알려진 관중(管仲). 당시 제나라 왕자 형제이던 규(糾)와 환공(桓公)은 왕권을 두고 치열한 싸움을 벌였다.

당시 관중은 규를 따랐으나, 왕권 싸움에서 이긴 환공이 왕위를 차지하면서 패한 규는 목숨을 잃게 됐고, 그를 지지하던 관중 또한 생사의 갈림길에 설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관중은 환공을 왕으로 섬기며 재상에 올랐고, 제나라를 부국(富國)으로 만드는 데 가장 큰 공을 세운 명재상으로 이름을 남겼다.

당시 유교사상의 지배를 받던 중국의 관점에서 두 임금을 섬긴다는 것은 쉽게 용납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불사이군(不事二君)’을 충신의 덕목 중 하나로 인식한 정치·사상적 풍토에 기인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관중은 자신의 명예와 출세를 위한 변절자일까. 단언컨대 그는 나라와 백성을 위해 자신을 내던진 진정한 충신이다.

“불사이군은 어리석은 자들의 생각이다. 진정한 신하는 주군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나라를 섬기는 것이다.”

관중이 남긴 이 말 한 마디는 진정한 신하가 추구해야 할 신념과 방향을 명쾌하게 제시해준다.

그렇다면 한국정치는 어떠할까. 이승만 전 대통령에서부터 현 문재인 대통령까지 살펴보면 많이 다른 듯하지만 부인할 수 없는 공통점을 지닌다.

우선 전 정권의 적폐와 실정을 비판하며, 통합과 화합을 국정기조로 국민을 섬기고 나라를 위한다는 선언적 통치이념과 국정 방향이 동일하다는 점이다. 하지만 내면을 들여다보면 ‘주군(主君)정치’에 함몰돼 있다는 점도 동일하다.

이승만 정권이 무너진 결정적 배경은 민심을 외면한 채 정권 유지에만 혈안이던 집권세력의 오만과 독선 때문이었다. 박정희 정권도 마찬가지다. 주군의 안위만을 앞세운 측근들의 어리석음이 주군의 죽음과 정권의 몰락을 자초했다. 전두환 정권이나 노태우 정권도 별반 다르지 않다.

민심보다 주군을 앞세운 정치는 끝내 민심의 이반과 저항 앞에 실패한 정권으로 기록됐다.

진정한 민주주의의 시작이란 기치를 내걸고 출범한 김영삼 정권과 뒤를 이은 김대중 정권 또한 성공한 대통령과 정권으로 평가받지 못한 이유도 민심정치가 아닌 주군 정치에 매몰된 탓이다.

노무현 정권과 이명박 정권, 박근혜 정권 또한 집권 내내 친노와 비노, 친이와 비이, 친박과 비박으로 나뉘어 파벌싸움에만 치중한 주군 정치가 큰 실패 요인임은 부정할 수 없다.

현 문재인 정권 역시 민심보다는 ‘팬덤(fandom) 정치’에 경도돼 있다는 비판을 면키 어렵다.

국민을 위한 정치는 없다. 현 정부를 지지하고, 그 진영에 속한 ‘정치적·사상적 팬’들만을 위한 독선과 편향뿐이다. 국가와 국민은 뒷전인 채 주군만을 보위(保衛)해야 한다는 ‘광(狂)팬 심리’가 정치를 지배하고 정권의 버팀목인 양 왜곡된 상황이니, 민심의 이반과 표류는 당연할 터.

그럼에도 통렬한 반성과 탈태(奪胎)는 활자화된 성명에만 나열될 뿐, 진심과 시선은 여전히 팬덤만을 향하고 있는 꼴이니 정치의 개혁과 변화를 기대함은 참으로 미련하고 어리석음이 아니겠는가.

이런 상황에선 “진정한 신하는 주군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나라를 섬기는 것”이라는 관중의 교훈마저도 그저 ‘변절자의 고백’으로 치부될 뿐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 팬덤에서 탈출, 정치적·진영적 전향을 통해 민심이 요구하고 제시하는 정치의 개혁과 변화를 수납하는 정치인들이나 오피니언리더들이 생겨나고 있다는 점이다. 기대하건대, 다음 정권에선 진영과 팬덤이 아닌 진정 나라와 국민을 섬기는 ‘무파(無派) 정치’와 ‘민심(民心) 정치’가 실현되길. 그러함으로 성공한 정권으로 역사에 기억되길.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충청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