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나를 괴수라 부르는 것은 당치도 않소! 내가 괴수라면 우리 농민군 모두는 도둑이 되는 것이오. 그들이 무엇을 훔쳤소이까? 그들이 남의 물건을 탐냈다면 가솔들이 굶어 죽어가는 데도 관아와 양반지주들을 찾아다니며 고리채라도 빌려달라고, 장리쌀이라도 빌려달라고 통사정을 했겠소이까? 농민들이 도둑이 아니라 농민들 피를 빨아먹은 양반들이 도둑이오. 도둑 중에서도 악질적인 상도둑놈이 양반지주들이오. 괴수는 그런 양반들 뒤를 봐주고 제 뱃속을 채운 조관재 부사가 괴수고 그런 괴수를 관리로 내려 보낸 임금이 괴수 중 괴수가 아닌지요?”

“저런 무참한 놈을 보았나! 임금님을 괴수라 하다니 도대체 네놈은 어느 나라 백성이더냐?”

“내게는 임금도 나라도 없소! 내게는 농민이 내 임금이고 농민이 내 나라요! 내 임금과 나라에 패악을 끼치는 도둑의 무리와 괴수를 더는 두고 볼 수 없어 이를 징치하려고 봉기를 일으킨 의로운 농민과 나를 도둑과 괴수로 몰다니 어불성설이오. 빼앗긴 농민은 도둑과 괴수로 몰리고, 빼앗은 양반과 관리는 더욱 배를 불리고 잘 사니 이런 세상은 뒤엎어 바로 세워야 하지 않겠소이까?”

“저런 요망한 놈이 있나! 얘들아, 저 괴수 놈의 입을 당장 막거라!”

안핵사 연창겸의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관군들이 달려들어 형틀에 묶여있는 우 대장을 난타했다.

“나는 농민군 대장이오! 우리는 반란군이 아니라 백성을 해롭게 하는 탐관오리들을 처단하려고 일어난 농민군이외다. 그런 농민군에게 상은 내리지 못할망정 제놈들의 죄상을 숨기기 위해 괴수로 몰다니 참으로 어이가 없소이다.”

우 대장이 관군들에게 무수히 매질을 당하면서도 농민군을 도둑집단으로 오도하려는 안핵사의 술책을 강하게 거부했다.

“네놈들이 아무리 그래도 살 수는 없다. 그러니 순순히 실토하고 저승길이나 편하게 떠나도록 하거라! 마지막으로 할 말이 있으면 해보거라!”

“내가 안핵사 영감 말대로 괴수는 맞는 것 같소이다. 농민들을 위해 뭘 좀 해보겠다고 벌였던 일이 얻은 것도 없이 그들의 목숨만 훔쳤으니 내가 괴수가 아니고 뭐이겠소이까? 그래도 백성들 피를 빨아먹는 양반들의 수괴가 아니고 농민들 수괴라고 불러주니 안핵사 영감이 너무 고맙소이다!”

우장규 농민군대장이 빈정거리며 형틀에 묶여있는 채로 안핵사 연창겸이 수인사를 했다.

안핵사 연창겸은 더 이상의 심문을 포기하고 국청을 접었다. 조정에서도 민심이 동요되는 것을 두려워하여 청풍에서 일어난 농민봉기를 빨리 수습할 것을 기별해왔다.

그러나 연창겸은 농민봉기의 주모자에 대한 취조를 하면서 봉기의 원인이 단순히 지방 관리나 양반지주들의 착취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란 것을 알았다. 연참흠도 충청도 관찰사로서 농민들이 관아의 환곡문제로 고통을 겪고 있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그런 문제는 비단 청풍만의 문제가 아니라 조선 팔도에서 횡횡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청풍은 다른 곳보다도 훨씬 더 조정과 관아에 대한 백성들의 불신이 깊어보였다.

농민봉기의 주모자에 대한 조사가 일단락 지어지자, 안핵사 연창겸은 은밀하게 청풍부사 조관재의 내사에 들어갔다. 농민군들뿐만이 아니라 장마당의 장사꾼, 머슴에 사노들의 입에서까지 조 부사의 이름이 오르내렸기 때문이었다. 이번 봉기가 표면적으로는 관아와 양반지주들의 착취로 피폐해진 삶을 견디지 못한 농민들이 일으킨 것은 분명했다. 그러나 청풍관내의 모든 고을에서 벌어진 패악은 조 부사 일개인의 욕심을 채우기 위한 것으로 보기에는 정도가 심했고 석연찮은 점이 너무나 많았다. 농민들을 더욱 피폐하게 만들고 봉기까지 발생한 것에는 분명 조 부사와 또 다른 무언가와 깊은 관련이 있다고 안핵사 연창겸은 확신했다.

③ 청풍부사 진퇴양난에 빠지다

조관재 부사는 농민봉기가 관군들에 의해 진압되자 난리 전보다도 더욱 기고만장해져 있었다. 그것은 난리통에 목숨이 두려워 숨을 죽이고 있던 양반지주들도 마찬가지였다. 농민군을 토벌하고 곧 관군이 청풍읍성에 들이닥칠 것이라는 풍문이 돌자 관아와 조 부사를 지키고 있던 농민들은 줄행랑을 놓았다. 그러자 다시 고개를 들고 나타난 것은 조관재를 비롯한 관속들과 양반지주들이었다. 이들은 농민군들이 읍성을 빠져나가자 민심을 수습한다는 허울 아래 자신들의 관노와 사노들을 규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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