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① 북진여각을 정리하다

강 건너 망월성에서 농민군들이 살육을 당하고 있던 그 시각, 북진여각의 분위기도 매우 긴장되어 있었다. 북진여각의 울 안 깊숙한 별당에서는 최풍원과 봉화수가 오슬이와 심각한 표정으로 마주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청풍읍성도 다시 조 부사의 수중으로 넘어갔다지?”

최풍원이 봉화수에게 물었다.

“동몽회 아이들 말로는 충주에서 관군과 맞붙어 싸우다 죽을 고비를 넘기고 도망친 농민군들이 염바다들에서 모두 전멸했다고 전하자 읍성을 지키고 있던 농민군들도 모두 도망을 쳤답니다.”

“농민군은 어떤 상황이냐?”

이번에는 봉화수가 오슬이에게 물었다.

“농민지도부들도 죽음을 각오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 도중의 객주들과 보부상들은 어찌 되었느냐?”

최풍원이 물었다.

“객주들 중에는 차대규 객주만 적극적으로 가담을 했고, 대부분 객주들은 거느리던 보부상과 식량만 농민군에 보냈습니다. 그들도 직접 싸움에 참여하기보다는 농민군의 뒤에서 짐을 나르는 일만 했기 때문에 크게 상하지 않았는데 퇴각하던 중 노루목에서 관군의 매복에 걸려 중군의 절반이 상했습니다. 아마 그때 보부상들도 상당수가 피해를 입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차 객주는 어찌 되었느냐?”

“청풍읍성까지 같이 온 것은 확실합니다. 관노들이 팔영루 문을 열어주지 않아 농민군들은 다시 망월성으로 갔고, 저는 이곳으로 왔으니 그 이후는 모르겠습니다.”

“차 객주는 중군장까지 맡았으니 살아있다 해도 중벌을 면치 못하겠지.”

최풍원이 깊은 숨을 내쉬었다.

“이번 난리가 어떻게 될까요?”

“오슬이 이야기를 듣지 않았는가? 이미 끝난 싸움이네. 이 싸움은 처음부터 농민군들이 이길 수 없는 싸움이었네!”

“그런데 어째서 장인어른은 농민군들을 도왔는지요?”

“그럼 자네는 그 상황에서 내가 어떻게 하는 것이 상책이라고 생각하는가?”

“처음부터 농민군이 질 것을 알았다면 그들을 도와주지 말았어야 하는 게 아닌가요?”

“그때는 농민군이 승할 때 아닌가? 내가 만일 그들의 도움을 거절했다면 그 난리 때 북진여각이 무사했을 것 같은가? 내가 농민군을 반대했다고 청풍관아에서 난리통에 북진여각을 보호해 주었겠는가? 힘없는 우리네가 세상을 살아남으려면 저울질을 잘해야 하네. 자네도 앞으로 이 점을 명심하도록 하게!”

최풍원이 봉화수에게 처세를 단단히 일렀다.

“장인어른, 이번 농민봉기로 우리 북진여각은 문제가 없을는지요?” 

“그래서 자네를 부른 걸세.”

“…….”

“북진여각도 이제 문을 닫을 때가 된 것 같네!”

“장인어른, 무슨 말씀이세요?”

“북진여각의 운세도, 내 운세도 여기까진가 보구먼.”

“왜 자꾸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이번에 나는 청풍관아에도 농민군에도 피할 수없는 악수를 두었네. 그 덫에 치일 줄 알면서도 놓을 수밖에 없었고. 그게 이제 내 발목을 잡을걸세!”

오늘따라 유난히도 최풍원의 어깨가 처져 보였다. 그렇게 당당하던 예전의 최풍원의 모습이 아니었다. 그것은 단지 세월의 무게 때문만은 아니었다.

“장인어른! 잠시 피했다가 잠잠해진 다음 돌아오시지요?”

“이미 때를 잃었네. 사람 운세도 장사도 시류를 잘 읽어야 하네. 그걸 읽지 못하면 그만둘 때가 된 것이라네. 그게 운명이고 세상이치인데 잠시 피한다고 뭐가 달라지겠는가? 순종해야지.”

“그래도…….”

안타까운 마음에 봉화수가 쉽게 미련을 떨치지 못했다.

“그러기에는 내가 저지른 일이 너무 커! 이제 곧 안핵사가 농민봉기를 조사하면 청풍관아의 비리가 밝혀질 것이고 내 죄상도 모두 드러날 걸세. 그렇게 되면 나도 무사하지는 못할 걸세! 그때가 되면 너무 늦을 것 같아 미리 자네에게 당부를 하는 것이네. 이제 북진에서 내가 하던 예전 장사는 끝났네. 북진은 점점 쇠락해질 걸세. 이제 앞으로는 젊은 자네들에게 맞는 새로운 장사가 나타날 걸세. 그런 장사를 하도록 하게! 삼개상전을 바탕으로 한양에서 상권을 키우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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