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모든 것은 끝났소! 각 군장들과 농민군들은 이제부터 고향으로 돌아가도록 하시오! 우리가 뜻한 바를 얻지는 못했지만 여러 고을민들과 뜻을 같이했던 일들은 백 번을 죽어도 잊지 못할 것이외다.”

우장규 농민군대장이 농민군의 해산을 정식으로 명했다.

“난, 대장의 명령에 따를 수 없소이다. 끝까지 싸우다 죽읍시다!”

“아까운 목숨을 함부로 하지 마시오. 집안에 노부모나 어린 처자식이 있는 고을민들은 관군이 몰려오기 전에 한시라도 빨리 이곳을 떠나 멀리 가시오. 살아있으면 언젠가는 우리가 원하는 세상이 올 것이오!”

우 대장이 눈물을 흘리며 간곡하게 부탁했다. 우 대장의 읍소에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큰절을 하고서 망월성을 떠나갔다. 그러나 오십여 명은 끝까지 농민군으로 남아 싸우다 죽겠다며 망월성을 떠나지 않았다.   

아침나절이 되자 관군들이 망월성으로 올라오기 시작했다. 어제 저녁 노루목까지 농민군을 추적해왔던 안핵사 연창겸이 관군을 이끌고 망월성 앞에 당도했다.

“지금 당장 문을 열고 나와 항복을 하거라! 그러면 선처를 하겠다!”

안핵사 연창겸이 위압적인 어조로 말했다.

“우리는 선처를 받을 일이 없소! 우리는 할 일을 했을 뿐이오!”

우장규 대장이 농민봉기의 정당성을 주장했다.

“네가 선량한 고을민들을 선동하여 고을 원을 능멸하고 관속을 참살하고 반란까지 일으킨 것이 백성으로서 할 일이란 말이냐?”

“우리는 임금이나 관리들에게는 관심이 없으니 반란은 당치도 않소! 우리는 고을민을 탐학하는 관속들을 경계시키려 한 것뿐이오! 청풍부사가 써준 완문도 있으니 안핵사가 살펴보시오!”

“네놈들이 겁박하여 받아낸 억지 완문이 무슨 소용이란 말이냐?”

“지금 안핵사가 억지를 부리고 있다는 것을 아시오? 안핵사라면 안핵사의 소임을 다하시오!”

“그렇소! 백성이 난리를 일으켰을 때는 그만한 연유가 있는 법이요. 그 연유를 알아보기도 전에 관리 편부터 들고 있으니 백성들 속사정을 알기나 하겠소?”

“저런 관리들이 팔도 곳곳에 박혀있으니 백성들이 못살겠다고 아우성을 치는 것이오!”

농민군들이 안핵사를 향해 침을 뱉고 종주먹을 들이댔다.

“이 놈들이 진정으로 잘못을 빌면 조정에 고해 목숨이라도 건져주려고 했더니 아니 되겠다! 모조리 포획하거라!”

안핵사 연창겸이 최후의 명령을 내렸다. 관군들이 판자문이나 다름없는 망월성문을 철퇴로 내려치자 순식간에 산산조각이 났다. 문을 지키고 있던 농민군들이 맨몸으로 관군들을 막았다. 모두들 죽음을 각오하고 관군과 대적했다. 그러나 무장도 변변치 않고 전의까지 상실한 농민군들은 관군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관군들이 짐승을 잡듯 무자비하게 농민군들을 도륙했다. 공포에 질린 농민군들이 관군들에게 쫓겨 사방으로 흩어졌지만 좁은 망월성 안의 농민군들은 어리에 든 병아리나 마찬가지였다. 관군들은 도망치는 농민군을 쫓아 성안 곳곳을 누비며 철퇴로 치고 장도로 목을 벴다. 살아남은 농민군들이 최후의 보루인 망월성 꼭대기의 이층망루까지 쫓겨 올라왔다. 이제는 더 이상 갈 곳도 없었다. 망루 아래는 까마득한 절벽이었다. 그 밑으로는 강물이 휘돌아 흘렀다. 멀리 북진나루가 아가리를 벌린 채 흐르는 강물을 모두 삼키고 있었다.

“저 놈들에게 치욕을 당하느니, 우리 모두 자결합시다!”

별동군장 이중배가 가쁜 숨을 몰아쉬며 망루에 모여있는 지휘부와 농민군에게 말했다.

“나도 저들에게 잡혀 고초를 당하느니 내 스스로 죽겠소!”

별동군장 이중배가 절벽 아래로 몸을 던졌다. 남아있던 몇몇의 농민군들도 이 군장의 뒤를 따라 허공으로 몸을 날렸다. 그들은 흰나비처럼 날개를 펄럭거리며 파란 강물 위로 떨어졌다. 남아있던 지휘부와 농민들이 그들의 마지막 모습을 보며 울부짖었다.

“난 살아있는 한 끝까지 맞설 것이오. 모두가 죽으면 부패한 관리들은 자신들 맘대로 우리의 뜻에 먹칠을 할 것이오. 붙잡혀 어떤 고초를 당하더라도 살아서 이번 항쟁에서 죽어간 우리 농민군들의 뜻을 알릴 것이오!”

우장규 농민군대장이 비장한 어조로 살아남은 군장들에게 말했다.

“우 대장 뜻에 따르겠소이다!”

군장들도 의연한 목소리로 농민봉기의 뜻을 세상에 알리기로 결의했다. 망루 아래서 계단을 오르는 관군들의 발자국 소리가 어지럽게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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