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⑤ 염바다들에서 농민군 대패하다
그날 밤, 야음을 틈타 완전무장을 갖춘 두 무리의 대오가 은밀하게 충주산성과 대림산성으로 들어갔다. 신태원 충주목사가 요청한 관군이었다. 충주목사의 다급한 기별을 받은 충청도관찰사 연창겸은 곧바로 한양으로 파발을 띄워 청풍에서 일어난 농민봉기의 처결을 바라는 장계를 올렸다. 이미 그 무렵 삼남지방을 휩쓸고 있는 민란을 잠재우기 위해 조정에서는 군사를 동원하여 강력하게 응징을 하고 있었다. 충청도관찰사의 장계를 받은 조정에서는 크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청풍민란은 충청도에서는 처음으로 일어난 농민봉기였고, 청풍을 관장하는 충주는 한양과는 육로와 물길로 직결되는 턱 밑의 큰 고을이었다. 만약 섣불리 대처를 하면 금방 한양 일대로 농민봉기의 불길이 확산될 것이었다. 조정에서는 그것을 염려했다. 조정에서는 즉시 충청도관찰사 연창겸을 안핵사로 임명하고 오백여 군사를 그에게 주어 농민봉기를 뿌리째 뽑아버리도록 어명을 내렸다. 충청도관찰사 연창겸은 직접 일천여 관군을 통솔하며 공주에서 충주까지 달려온 것이었다. 이들 군사들은 언제 어디서라도 명령만 떨어지면 금방이라도 전쟁을 벌일 수 있도록 조련된 최정예의 관군들이었다. 충주산성으로 잠입한 안핵사 연창겸은 무관으로부터 충주읍성의 상황과 농민군에 대해 세세한 보고를 받았다.
이튿날 농민군들은 지도부의 지시에 따라 겹겹이 둘러싸고 있던 포위망을 풀고 충주읍성 바깥으로 진영을 옮기기 시작했다. 성을 둘러싸고 있는 농민군들 때문에 성안 백성들의 고초가 이만저만이 아니라는 충주목사 신태원의 뜻을 받아들이기로 농민군지도부에서 결정했기 때문이었다. 남문 앞에 진주해 있던 농민군의 주력부대인 좌·우군부터 시작하여 별동군·초군·사노군이 그 뒤를 뒤따르고 중군과 보급대가 대열의 후미에 섰다. 농민군지도부에서는 충주읍성과 지척의 거리에 있는 남산 아래 창룡사를 새로운 진영으로 삼을 생각이었다. 창룡사는 충주산성과 대림산성 사이에 자리하고 있는 오래된 절집으로 청풍으로 가는 길목이기도 했다. 농민군들은 이곳에서 진을 치고 있다 공주의 충청도관찰사로부터 완문에 대한 답이 오면 곧바로 청풍으로 되돌아갈 작정이었다. 농민군들이 새로운 진영지인 창룡사를 향해 행군을 하며 읍성을 막 벗어났다. 그때였다. 갑자기 충주읍성의 남문과 동문에서 관군이 쏟아져 나왔다. 관군들은 포수들을 앞세워 화승총을 쏘며 농민군들의 후미를 공격했다. 농민군들이 생각지도 못한 관군의 공격에 대응도 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했다.
“사노군과 초군은 후미로 나와 관군을 막고, 좌군과 우군은 행군을 서둘러 창룡사로 들어가 진영을 갖추어라!”
우장규 농민군대장이 다급하게 예하 군장들에게 소리쳤다. 사노군과 초군이 관군들과 공방전을 벌이고 있는 사이 각 군장들이 농민군들을 독려하며 창룡사 입구에 다다랐다. 그러자 이번에는 충주산성과 대림산성의 성문이 열리며 기병을 앞세우고 무장한 관군들이 성이 떠나가라 함성을 지르며 쏟아져 나와 농민군들의 앞길을 막았다. 충청도관찰사이자 안핵사인 연창겸이 인솔해와 성 안에 숨겨두었던 지원군이었다. 앞길까지 막혀버린 농민군들이 순간 갈 길을 잃고 허둥거렸다. 때를 놓치지 않고 기병들이 뽀얀 먼지를 일으키며 성 아래 농민군들을 향해 돌진했다. 그 뒤를 관군들이 창칼을 번뜩이며 달려 내려왔다. 산성에서 나온 관군에게 진로가 막히고 읍성에서 나온 포수에게 후미가 막힌 농민군들은 진퇴양난에 빠졌다. 어렵기는 관군도 마찬가지였다. 골짜기에서 워낙에 많은 농민군들을 맞닥트린 관군 역시 제대로 공격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좌군은 기병과 관군을 막고, 우군과 중군은 행로를 바꿔 마지막재에 진을 치시오!”
우 대장이 각 군장들에게 명령했다.
“대장, 염려 놓으시오! 내가 당장 나아가 저 놈들의 대갈통을 박살낼 것이오!”
좌군장 이창순이 도끼를 공중 높이 들어 올리며 의기에 차 말했다.
“대장도 별동대와 함께 우선 여기부터 벗어납시다!”
이중배 별동군장이 말했다.
“우 대장, 그게 좋겠소이다!”
하익수 우군장도 동조를 했다. 농민군의 우군과 중군이 좌군과 초군, 그리고 사노군이 관군과 싸우는 사이 별동군의 선도를 받아 무사히 빠져나가 계명산 아래 마지막재로 향했다. 농민군의 중간에서 행군하던 중군과 우군이 빠지자 좌군과 초군 사노군이 한데 엉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