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우장규 농민군대장은 각 군장들에게 파발을 띄워 충주읍성 이십 리 바깥에 진을 치도록 했다. 좌군 본진은 육로가 지나는 노루목에, 우군 본진은 꽃바위나루 건너 마지막재 아래 진을 쳤다. 별동군은 충주산성이 있는 남산 아래 진주시켜 산성의 관군들이 농민군 본진을 공격하지 못하도록 후미를 막고, 초군은 충주읍성의 오른쪽 풍동에 배치했다. 우군 예하의 사노군은 마지막 재를 넘어 충주읍성이 가까운 염바다들에 진을 쳤다. 그리고는 충주읍성을 지키고 있는 관군들이 눈치를 채지 못하도록 은밀하게 관아를 압박해 나갔다. 이창순이 이끄는 좌군은 노루목을 지나 충주산성과 대림산성 사이를 지나 충주읍성 동문으로, 천만이가 이끄는 초군은 풍동의 달래강을 건너 읍성을 가로질러 흐르는 충주천을 거슬러 남문으로 향했다. 양태술이 이끄는 우군과 사노군은 마지막재를 넘어 염바다들을 지나 서문과 북문으로 접근했다. 마침내 모든 농민군의 좌·우군이 충주읍성의 사대문 가까이에 도착하자 앞서 와 매복하고 있던 초군과 사노군이 일제히 함성을 지르며 성문을 향해 돌진했다. 때를 맞춰 우군과 좌군도 함성을 지르며 성문을 향해 쏜살같이 질주했다. 성문을 지키고 있던 관군들이 불시에 습격을 받고 민첩하게 성 안으로 들어가 문을 닫아 걸었다. 성을 지키던 관군들은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문루 위에만 몇몇의 관군들이 성벽의 총안 뒤에 몸을 숨기고 농민군들의 동태를 살폈다. 농민군들이 관군들의 기선을 제압하기 위해 쉬지 않고 함성을 질러댔다.

이제 충주읍성은 농민군들에 의해 성안에서는 개미새끼 한 마리 밖으로 빠져나올 수 없었다. 농민군들이 충주읍성을 겹겹이 둘러싸고 있는데도 성안에서는 문을 굳게 닫아건 채 어떤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충주관아에서는 읍성문을 굳게 닫아걸고 아예 대거리를 하지 않았다. 비록 무장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농민군이지만 일백여 명이 조금 넘는 병력으로 이천 명에 육박하는 농민군을 대적한다는 것은 아무리 조련이 잘된 관군이라 해도 섶을 지고 불길로 뛰어드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신태원 목사는 공주감영에 요청한 증원군이 올 때까지 버틸 생각이었다. 신 목사는 모든 관속들을 동원하여 낮에는 가짜 총을 어깨에 메고 포수처럼 위장을 시켜 성벽 위를 돌도록 지시했다. 그리고 밤에는 성벽의 총안마다 횃불을 걸어놓고 꺼지지 않도록 각별히 관리를 시켰다. 턱도 없이 모자라는 수적 열세를 감추어 농민군들이 쉽사리 쳐들어오지 못하도록 전술을 쓰기 위함이었다.

며칠이 지나도록 충주읍성의 관군과 농민군들 사이에는 사소한 충돌조차 일어나지 않았다. 그 사이 차대규가 이끄는 중군과 북진여각의 객주들과 보부상으로 편성된 보급대가 도착해 농민군 수는 이천이 훨씬 넘었다. 농민군들은 며칠 동안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자 그 자리에 삼삼오오 떼를 지어 잡담을 하다 끼니때가 되면 식량을 받아다 끓여먹었다. 그 모습이 관군과 대치하고 있는 전장이 아니라 마치 일손을 멈추고 잠시 천렵을 나온 농군들처럼 한유하게 보이기까지 했다. 충주읍성의 관군들은 수적 열세로 공격을 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농민군들은 성을 어떻게 공격해야 하는지 방법조차 알지 못했다. 농민군들 중 제대로 된 무기로 무장한 부대는 별동군 일부였고 나머지는 농기구에 죽창이 전부였다. 그들은 농사를 짓던 농민들이었다. 그런 농민군들이 고도로 조련된 관군들도 넘기 힘든 성을 공격해서 함락시킨다는 것은 도무지 불가능했다. 농민군들은 그저 앞으로 나아가고 뒤로 물러서는 것만 할 뿐이었다. 그것은 농민군지도부도 마찬가지였다. 직책은 농민군대장에 군장들이었지만 이들은 무장 출신이 아니라 일반 백성에 불과했다. 그러니 성을 공격하거나 공략할 방법을 알고 있을 리 만무했다. 거기에다 청풍읍성에 비하면 충주읍성은 철갑을 두른 무사처럼 단단하고 견고했다. 기껏해야 농민군들은 성문 앞까지 우르르 몰려갔다가 성벽 위의 포수들이 쏘는 화승총 소리에 혼비백산하여 꽁지가 빠지게 도망쳐오기 일쑤였다. 농민군들도 애초부터 청풍관아를 점령할 생각은 없었다. 더구나 충청좌도의 가장 큰 고을인 충주읍성까지 오게 될 것은 농민군지도부도 생각하지 못한 일이었다. 도회를 통해 농민들의 뜻을 전하고 그것을 청풍부사가 약속하면 그것으로 끝을 맺겠다는 의도였다. 그런데 농민군의 의도와 달리 일은 자꾸 커지고 있었다. 그렇다고 아무런 성과도 없이 농민군을 돌려 청풍으로 돌아갈 수도 없는 일이었다. 참으로 난감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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