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원진 시인 타계 1주기 유고시집 ‘구절초의 노래’ 출간

[충청매일 김정애 기자] 당숙네 살림살이 제금날 적에

윗말 양지 뜸에 초가삼간 지었지

한 아름 기둥 위에 들보를 얹고

서까래 가닥마다 대못을 박았지

못은 이음새마다 깊이 박혀

번듯한 집을 이루었지

못은 박히는 게 생명이었지

구부러지고 녹슬어서

아무 데도 못 박히는 못은 못도 아니지

예수 십자가에 박힌 못 말고

여인네 앙가슴에 박혀 녹슨 못도 말고

하얀 벽에 흠집이나 내는 못도 말고

선비 방 바람벽에 튼튼히 박혀

세한도 한 폭은 걸어야 못다운 못이지

시골집 곳간 시렁에 박혀

씨오쟁이 한 개라도 걸어야 못이지

못은 옳게 박히는 게 생명이지

─ 조원진 작 ‘못’ 전문

삶의 애환을 진솔하게 노래한 유고시 90여 편이 동료 시인들에 의해 지상에 남게 됐다.

아름다운 서정으로 아프고도 따뜻한 감성으로 노래하며 충북문단을 견인했던 조원진(趙元鎭) 시인(1956~2020)의 유고시집 ‘구절초의 노래’(고두미/1만원)가 타계 1주기를 맞아 출간됐다.

시인의 벗이자 충북작가회의 전임 회장이었던 장문석 시인은 시인이 사망한 후 유족들로부터 세상에 채 발표되지 않은 시 90여편을 넘겨 받았다. 이 시들을 읽어보며 앞서간 시인의 눈물겹도록 애달픈 마음을 보았다. 혼자만 두고 보기에는 안타까웠다. 지역에서 함께 문학활동을 하고 있는 후배 류정환 시인(고두미 대표), 말비 시인(문학평론가)과 공유하게 됐다.

후배 시인들 역시 시인의 유고시를 접하고 ‘이대로 묻히는 것이 안타까워’ 세상에 내놓기로 의기 투합했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구철초의 노래’가 됐다.

조원진 시인은 충북 보은군 산외면 장갑리 출생이다. 보은과 청주, 서울에서 학교를 다녔다. 그는 젊은 날 공단 노동자로 일했고, 군복무 후에는 보은교육청에서 공무원으로 일하다 그만두고 농사를 지었다. 한때 보은군 숲 가꾸기 사업 일을 했고, 그 후에는 보은 재래시장 안에 있는 아내의 가게에서 일을 도왔다.

그는 틈틈이 책을 읽고 시를 썼다. 2000년에 동양일보 신인문학상 공모에서 시 ‘그해 겨울’이 당선돼 문단에 나왔으며, 충북작가회의 회원으로 활동했다. 2003년에 첫 시집 ‘기러기 부리에 묻어온 겨울’을 냈다. 두 번째 시집을 준비하고 있던 2020년 3월 16일 밤 시인은 갑자기 사망했다. 누구도 예기치 못한 일이다. 그는 고향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봉분 없이 평평하게 묻혔다.

그는 시 ‘행장(行狀)’에서 아버지의 목소리를 빌려 “갈 길이 멀수록 짐이 가벼워야/ 떠나기가 수월하니라”하고 읊었다. 마치 자신의 행장을 가볍게 준비해온 것 같았다.

조원진의 시는 크게 사회비판적인 시, 인간 존재와 삶에 관한 시, 생명과 자연 존중의 시로 구분할 수 있다. 첫 번째 부류의 시는 우리 사회의 불평등과 불의를 비판하고 정의와 민주주의를 옹호했다. 두 번째 부류의 시는 한쪽으로는 죽음을, 다른 쪽으로는 사람들이 어울려 사는 풍경을 소재로 삼았다. 세 번째는 동식물의 생명을 중시하고 자연과 인간이 함께 살아가는 내용이다.

말비 시인은 시집 발문에서 “부드러움은 생명의 특징이고 단단함은 본질과 진리의 특징이다. 그것은 생명의 본체인 씨앗의 특징이 아닐까. 자연의 숨결 속에서 씨앗은 움트고 자라고 꽃피우고 씨앗으로 돌아간다. 그것이 한 삶이다. 그리고 한 삶의 본질이고 모든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부드럽고 단단한 생명과 그것의 본질 추구, 이것이 조원진의 시정신”이라고 밝혔다.

이번 시집은 첫 시집에 비해 대부분 길이가 짧고, 산과 나무 등 자연을 소재로 한 시가 많다. 많은 시에서 화자의 목소리는 부드럽고 가벼워졌으며, 시선은 대립하고 비판하기보다 받아들이고 조화롭게 바뀌었다. 정서는 슬픔을 바탕으로 하고 있으나 이전 시보다 감정이 훨씬 정화되었다. 주제가 메시지처럼 빠르게 전달되는 시보다 여운으로 잔잔히 스며드는 시가 많다.

이러한 변화는 어떻게 어디에서 시작되었을까? 시인은 충북 생명의 숲에서 실시한 숲해설가 양성교육에 참여해 숲과 생명에 대해 배우면서 “지금까지 취미랍시고 내가 해 온 일들이 얼마나 쓸데없는 일이었는지 깨닫게 되었다”고 밝힌바 있다.

시인이 남긴 몇권의 습작노트에는 여러 편의 산문이 있다. 대부분 자연과 생명에 관한 내용이다. 예를 들면 전선과 통신선 때문에 자연 그대로 크지 못하는 보청천 가로수, 분재와 화분에 식물을 키우는 취미생활에 대한 반성, 토종들의 수난, 농약의 과다한 사용이 자연에 미치는 영향 같은 것들이다.

시인이 날카로운 못을 소재로 쓴 시에서, 못은 부드럽고 단단한 존재다.

말비 시인은 이 시에 대해 “삶의 태도와 물질의 본질을 이야기하지만 소재와 배경이 평범하다. 즉, 관념을 구체화하여 독자가 쉽게 느끼고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다. 주제는 무거우나 어감이나 어조, 구조와 어미의 반복과 변화가 밝고 가벼운 느낌을 주어 시 전체가 부드러우면서 단단하게 엮여 있다”며 “부드러움과 단단함은 이 시의 두드러진 특징이자 목정 조원진이 추구해온 시정신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다. 그는 시에서 ‘못다운 못’의 삶과 ‘못이 옳게 박히는’ 세상을 드러내고 있다. ‘못다운 못’의 삶을 사람다운 사람의 삶으로, ‘못이 옳게 박히는’ 세상을 사람이 옳게 사는 세상으로 바꾸어 보자. 이것을 합치면 사람답게 사는 세상으로 귀결된다”고 해석했다.

시인은 떠났지만 그는 ‘지상의 빈자리 하나 저 하늘에 별’이 되었다. 유고시집 발간의 계기를 마련해준 장문석 시인은 “그대가 남긴 이승의 절창을 이렇게 시집으로 엮어 바친다. 꽃을 핑계로 술병 들고 찾아가면, 모쪼록 볕 바른 데 좌정하여 그중 한 수씩만 읊어 주시길”이라며 시인을 불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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