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종진 청주대 명예교수 ‘속담 우화집’ 출간
“속담은 진리에 최단거리로 향해가는 말”

[충청매일 김정애 기자] ‘한국의 속담 대사전’(태학사/2006)으로 남과 북 한민족이 사용하던 수많은 속담을 집대성해 우리 민족 언어발달의 우수성을 널리 알린 정종진 명예교수(청주대)가 이번에는 ‘속담 우화집’(범우사/1만2천원·사진)을 출간했다.

정 교수는 우리 민족이 생활속에서 고대부터 사용한 속담 중 열두 동물을 대상으로 한 속담을 건져 올려 각각 일곱 가지씩 짧은 이야기를 만들었다. 열두 동물을 소재로 한 것은 인간에게 가까이 있는 동물들로 ‘띠’에 해당하는 것들이며, 동물들의 성품으로 미루어 인간의 성격과 길흉화복을 짐작해왔기 때문이다. 전체 84개의 우화(寓話)로 창작된 이야기는 인간의 세태를 비판하거나 생태적 사상을 제시한다. 흔히 사용하는 속담이지만 어떤 경우에 주로 쓰이는지, 현대인들에게 이해를 돕는 풀이도 곁들였다.

“모든 동물들은 다 생각할 줄 알고 자기들의 말로 표현도 합니다. 그런데 인간들은 그것을 알지 못할 뿐만 아니라 알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저 동물들을 마음껏 부리고 잡아먹는 대상으로밖에 여기지 않습니다. 인간은 인간세계 밖에서는 거의 문맹(文盲)입니다. 이 세상이 좀 더 평화롭게 되려면, 인간들이 다른 생명들의 몸짓과 말을 더욱 이해하도록 애써야 합니다. 인간세계에 새로운 문맹퇴치 운동이 일어나야 하는 것입니다.”

정 교수의 이같은 생각은 앞서 발간한 ‘닭이 어찌 인간을 두려워하랴’(범우사/ 2017) ‘야생에 다진 몸이 최첨단이다’(범우사/ 2019) 등의 저서와 맥락을 같이 한다.

이들 저서들은 공통적으로 자연과 인간의 공존을 이야기 한다. ‘닭이 어찌 인간을 두려워하랴’에서는 인간은 예로부터 닭에게 중요한 의미를 부여해 왔다는 것을 강조하며 닭을 먹을 대상으로만 생각하지 말고, 닭에게 부여해 준 의미 중 일부라도 회복시켜 인간이 닭과 공존하는 명분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야생에 다진 몸이 최첨단이다’에서는 원시 생명체들이 풍성했던 자연을 그리워하면서 오늘의 세태를 꼬집고 있다. 현대인들보다 우매함이 덜해, 자연을 더럽히지 않던 야생의 사람들이 그립다고 묘사한다. 물과 공기가 한껏 혼탁해진 이 시대를 살면서, 수렵어로, 채집이 더 이상 가능하지 않다는 것에 안타까움을 표하고 있다. 정 교수는 갈수록 대자연이 고갈되고 병들어 가는 것이 안타깝다. 이같은 생태적 삶의 당위성이 속담을 모티브로 한 우화(寓話)로 탄생한 셈이다. 

첫 번째 동물은 쥐다. ‘쥐 한 마리가 태산을 흔든다’는 속담으로 만든 우화를 들여다 보자. 도로가 정미소에서 살고 있는 엄마 쥐와 아기 쥐가 대화를 나눈다. 아기 쥐는 매일 아침 정미소 앞에서 로드킬 당하는 동물들고 보고 두려움을 느껴 엄마 쥐에게 이사가자고 말한다. 하지만 엄마 쥐는 이미 ‘사람만큼 무서운게 없다’는 경험을 하고 안전하다고 생각한 곳으로 이사 왔는데, 하필이면 도로가라며 어쩔수 없이 참고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

아기 쥐는 야생동물들이 로드킬 당하는 장면을 보고 남의 일 같지 않다. 하루는 도로 앞에 인간들의 자동차 여러 대가 뒤엉키는 사고가 발생한다. 알고 보니 아기 쥐가 가족의 집 앞을 막고 있는 고라니 발등을 꽉 물어버렸고, 이에 놀란 고라니가 갑자기 뛰다 도로로 달려갔다 차들이 연이어 부딪치는 사고가 발생 한 것이다. 이를 지켜보며 아기쥐는 이제부터 정미소 앞에서는 차들이 천천히 달릴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같은 사실을 알게된 엄마 쥐는 “세상에 네가? ‘간이 배밖으로 나왔’구나. ‘쥐 한 마리가 태산을 흔든다’더니, 네가 그런 짓을 했구나”라고 말한다.

쥐는 인간과 가장 가까이 붙어 살고 있는 동물이다. 악착같고 부지런하고 영특하다. 지혜롭고 인내심이 강해 의식주 걱정이 없다. 부지런함은 부귀영화의 밑천이 되기 때문이다. ‘쥐 한 마리가 태산을 흔든다’는 속담을 통해 로드킬, 길 위의 살생를 경고하며 쥐가 어떻게 지혜를 발휘해 인간에게 경고를 주는지 알려주는 우화다.

한 편의 우화에는 여러 개의 다른 속담이 함께 한다. ‘쥐 한 마리가 태산을 흔든다’에는 ‘사람만큼 무서운게 없다’, ‘쥐도 새도 모르게’, ‘간이 배 밖으로 나와’ 등의 속담이 등장한다. 이들 각각의 속담은 어떤 경우에 사용하는지, 우화 뒤편에 별도로 풀이해 주었다. 예를 들면 ‘사람만큼 무서운게 없다’는 ‘사람이 온갖 못된 일을 꾸미게 되면 아주 무서운 일이 생겨날 수 있다는 뜻으로 하는 말’이라는 해설을 달아 주었다. 

다음 동물은 소다. 소는 우직해서 믿듬성이 있다. 성자의 모습이고 은자의 미덕을 갖추고 있다. 근면함, 성실성, 인내심을 온몸으로 보여준다. 소를 소재로한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 ‘소는 믿어도 사람은 못믿는다’ 등의 속담 우화에서 소가 ‘농민의 조상이라고 하는데, 실은 모든 사람의 스승’이라는 점을 깨우쳐 준다.  

용맹을 상징하는 호랑이 편에서는 ‘호랑이가 없는 산에서는 토끼가 선생 노릇 한다’, ‘호랑이에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 등의 이야기를 통해 온갖 어려움을 슬기롭게 헤쳐나가는 영물로서의 호랑이를 이야기 한다. 귀엽고 온순한 토끼 편에서는 ‘토끼가 용궁을 가도 살 길은 있다’,  ‘토끼 제 방귀에 놀란다’ 등의 이야기에서 지혜가 여우를 능가하며, 귀와 다리로 제 몸을 지키고 평화를 상징하고 선(善)의 근원이라는 점을 일깨워 준다. 이밖에도 상상의 동물이자 자연현상의 정점인 용과 자연의 섭리에 잘 순응하는 뱀, 인간 욕망의 상징인 말, 집념이 강하고 질서습관이 있는 양, 인간의 탐욕과 유사한 원숭이, 오덕을 지닌 닭, 불굴의 투지와 희생정신이 있는 개, 돈의 전령사가 된 돼지에 대한 속담 우화가 다채롭게 펼쳐진다.

정 교수는 “서양 우화집의 경우 동물들을 등장시켜 빗대는 방법으로 인간에 대해 말해왔다. 인간들이 자연의 원리에 어긋나지 않고 좀 더 겸손하게 살아가도록 우화를 택한 것이다. 수 많은 우화들이 오랜세월 인간들을 각성시켜 왔다. 누구도 결코 얕볼 수 없을 만큼의 지혜를 준다”며 “이 책을 통해 우화와 속담의 장점을 함께 얻으려는 생각을 가지고 이야기를 만들었다. 그야말로 ‘꿩 먹고 알 먹고’를 시도해 보았다. 우화는 넌지시 말하기의 가장 좋은 수법 중 하나이며 속담은 진리에 최단거리로 향해가는 말이다. 이 이야기들을 읽다보면 의식, 무의식 속에 속담이 저장되기도 하고 그를 통해 진실의 통로를 쉽게 찾아나아갈 수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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