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명 시인]띄어쓰기는 유럽의 여러 언어에서 자연스레 만들어진 규칙입니다. 이유는 아주 간단합니다. 그들의 표기가 낱말로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I am a boy’라는 문장에는 낱말 네 개가 있습니다. 이들은 서로 붙을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 말에서는 다릅니다. ‘나는 소년이다’에서 ‘소년’과 ‘이다’가 서로 붙습니다. ‘소년이다’는 두 낱말입니다. 벌써 유럽어와는 다른 띄어쓰기를 하는 중입니다. 유럽어에서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던 것이 우리말에서는 문제가 됩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우리말은 한 말뿌리에 다른 말이 들러붙어서 낱말을 이루기 때문입니다. ‘있었다’의 경우 ‘있다’의 두 소리 사이에 옛날을 나타내는 말 ‘었’이 끼어드는 것입니다. 영어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am, was, were, been, is’처럼 상황에 따라 시제에 따라 낱말이 모두 다릅니다. 그래서 띄어쓰기가 저절로 됩니다. 이렇게 되지를 않고, 사이사이에 말들이 들러붙어서 되는 말이기 때문에 우리말은 교착어로 분류합니다. ‘교착어'의 ‘교’는 ‘부레풀'을 뜻합니다. 보통 풀은 쌀가루나 밀가루를 끓여서 쓰는데, 좀 더 단단하게 붙이려면 물고기의 부레를 골라서 끓입니다. 그러면 요즘 화공 본드보다 더 좋은 접착제가 됩니다. 이와 같이 서로 다른 말들이 들러붙어 떨어지면서 다양한 낱말을 만들어냅니다. 그래서 언어분류학상 교착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우리말과 달리 유럽어는 굴절어입니다. 굴절이란 구부러진다는 말입니다. 즉 격이나 시제에 따라서 낱말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굴절된 모든 언어가 다 낱말이 됩니다. 동사나 형용사에 기본형이 있는 우리말과는 다릅니다. 우리말에서 ‘예쁜, 예쁘니, 예뻐서’는 사전에 나오지 않습니다. ‘예쁘다’만 나오죠. 그러나 영어에서는 이 모든 변화된 형태가 다 낱말로 사전에 오릅니다.

이런 굴절어에서 또렷이 나타나는 띄어쓰기를 교착어인 우리나라 말에 끌어들인 것입니다. 이렇게 띄어쓰기를 하는 이유는 뜻을 또렷이 하려는 것입니다. 뜻을 또렷이 하려고 낱말 사이를 띄우고 나면, 또 한 가지 문제가 두더지처럼 솟습니다. 즉 말의 꼴을 드러내야 한다는 것이죠. 그래서 ‘소리나는 대로 적되’, ‘어법에 맞게 적는다’는 토가 달린 것입니다. 하지만 이 토는 그저 참고할 토에만 머물지 않고, 우리말의 규칙을 가장 어려운 대상으로 올려놓았습니다. 한 글자를 쓸 때마다 맞춤법에 맞나 안 맞나를 스스로에게 물어야 하는 상황을 만들었습니다.

이런 문제는 굴절어의 특징인 띄어쓰기를 교착어인 우리 말에 적용하면서 생긴 문제입니다. 언뜻 보면 우리 글의 많은 문제점을 해결해준 좋은 방안인 듯한데, 파볼수록 또 다른 문제점을 자꾸만 드러낸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끝없이 도돌이표 같은 질문을 해야 하고, 그 질문은 우리말의 특징인 교착어를 어떻게 문장으로 배열해야 하나 하는 질문에 맞닿습니다. 과연 띄어쓰기로 우리 글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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