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연구원 연구위원

[충청매일] 필자는 스마트폰이 출시 초창기인 2010년부터 아이폰을 사용했다. 당시는 다른 스마트폰이 없었기 때문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 이후 약 10년 동안 3번의 기기 변경을 했고, 매번 같은 제품이었다. 필자는 한번 익숙해진 것은 특별한 하자가 없는 한 다른 것으로 잘 변경하지 않는 습성이 있다. 아이폰이 타 제품에 비해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불편한 점이 더 많다. 컴퓨터와 연결하여 자료를 옮길 때는, 10년이 넘은 경력에도 자료를 날려버리는 일이 종종 발생한다. 불편하면서도 익숙해져 버린 것을 바꾸기 꺼리는 필자의 마음은 무엇 때문일까? 스스로 궁금하다.

반면, 필자의 아내는 스스로 선택하지 않고 남편의 권유로 스마트폰을 선택했다. 원래 기계에는 재능이 없는 사람인데다 사용하기 까다로운 기종이라 업데이트 알림이 떠도 모르고(진짜 모르는지는 모른다) 그냥 사용한다. 결국은 답답한 필자가 그 쉬운 업데이트를 해 주곤 하는데, 아내는 그때마다 전혀 고마운 반응이 없다. 하루는 스마트폰이 잘 안 된다면서 짜증을 냈다. 뭔일인가 싶어 들여다봤더니 별 이상은 없고, 실행 속도가 느려진 것이다. 특별히 이상이 없는데 기기가 잘 작동하지 않을 때 가장 일반적으로 시도하는 방법은 기기를 껐다 켜는 재부팅이다. 이렇게 간단한 방법을 아내들(?)이 모른다는 것을 남편들은 잘 이해하지 못하지만, 아무튼 그렇게 아내는 또 잠잠해졌다.

아주 정교하게 설계되고 잘 조립된 컴퓨터와 프로그램도 자주 이런 문제가 발생한다. 최근에는 특정 시점의 상태(원래 상태라고 한다)로 되돌려 주는 기능도 생겼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컴퓨터에 이상이 생기면 하드디스크롤 포맷하고 프로그램을 다시 설치했고, 반나절 이상의 시간을 소비해야 했다. 그런데 최근에는 프로그램을 모두 설치한 후, 아직 정상적으로 작동할 때, 시스템 백업을 해 두면 된다. 문제가 발생하면 바로 그 백업 시점의 원래 상태로 돌려주기만 하면 되는 아주 훌륭한 기능이다.

이러한 복원 또는 재부팅은 기계에만 필요한 것은 아닌 것 같다. 우리가 사는 지역사회와 국가, 나아가 전 세계에도 재부팅이 필요할 때가 있다. 재부팅은 복잡하게 얽히고 꼬여있는 관계나 체계를 다시 처음의 상태로 돌려주는 아주 간단하면서도 효과가 좋은 방법이다. 물론 사회 조직이나 국가의 재부팅은 스마트폰이나 컴퓨터처럼 간단하고, 비용이 들지 않는 방법은 아니다. 재부팅 했을 때의 원래 시점도 아직 정의되지 않았다. 어쩌면 사회적 재부팅은 허망한 바램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 불가능할 것 같은 재부팅을 눈에도 보이지 않는 코로나19 바이러스가, 그것도 전 세계적으로 동시에 진행하고 있다. 신의 존재도 부정하는 만물의 영장이라고 자칭하는 인간도 하지 못하는 것을 바이러스가 하고 있다. 어쩌면 코로나19는 너무나 교만해진 인간을 깨우치고 겸손케 하려는 절대자의 훈계는 아닐까?

조직이나 사람의 관계에서도 재부팅 기능이 있다면 어떨까? 얽히고설킨 복잡한 관계를 원래 상태로 되돌리는 방법이 있다면, 우리의 삶은 훨씬 더 행복할 것이다. 얽히고설킨 그 상태에서 어떻게든 풀어보려고 하면 더 꼬이고 복잡해지며, 관계는 더 틀어진다. 이런 관계의 재부팅이 전혀 불가능하지는 않다. 관계의 재부팅 과정에서 마주하게 되는 불편함, 불안함, 두려움 등에 과감하게 마주할 용기만 있다면 가능하다. 이러한 재부팅 과정이 없는 개인이나 조직의 발전방안 논의는 반복되는 상실감만 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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