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관아 창고를 열고 구휼미를 방출하라!”

“조관재는 당장 나와 고을민들에게 사죄하라!”

“관아 문을 부수고 동헌으로 쳐들어가자!”

금남루 앞에 운집한 농민군들이 입을 모아 구호를 외쳤다. 예전과는 달리 농민들의 기세가 당당했다. 농민군들이 지금까지 자신들을 힘들게 했던 수탈자들의 처벌을 요구했다. 청풍관아는 농민군들로 겹겹이 둘러싸여 조관재 부사와 아전들은 그야말로 고립무원이 되었다.

분노한 농민군들의 과격한 움직임에 위협을 느낀 조관재 청풍부사가 농민군지도부로 기별을 해왔다. 농민군들이 행동을 멈추고 기다려주면 오늘 중으로 농민들이 요구한 사안들을 검토하여 알려주겠다는 전갈이었다. 그리고는 유겸호와의 상의가 필요하니 그를 관아로 들여보내줄 것을 요구했다. 유겸호는 농민들의 항쟁 의지가 투철함을 알고는 읍성도회에서 슬그머니 자취를 감추었던 온건주의자이자 사족대표였다. 조 부사가 농민지도부도 아닌 유겸호를 찾는 것이 의심스럽기는 했지만, 농민지도부에서도 항쟁이 더 커지기 전에 자신들의 요구조건이 받아들여준다면 어서 도회를 해산하고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상책이라고 생각했다.

농민지도부에서는 유겸호를 수소문해 조 부사의 뜻을 전했다. 유겸호는 자신의 뜻과는 달리 뭔가 자꾸만 수렁으로 빠져들고 있는 듯한 느낌을 떨칠 수 없었다. 유겸호가 농민도회에 참여한 것은 양반인 자신에게까지 요구하는 통한의 폐단에 불만을 품고 관아에 등소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자신의 처음 생각과는 달리 농민도회의 입장은 달랐다. 유겸호는 억울한 입장을 풀기 위한 것이었지만, 농민들은 당장 생사가 걸린 생존의 문제가 걸려 있었으므로 등소나 올리며 관아의 입장을 기다릴 여유가 없었다. 더구나 지금 농민들이 하는 행동은 모반이나 다름없는 난리를 일으킨 것이었다. 주동자는 볼 것도 없이 효수형이었다. 유겸호는 농민도회에서 빠지고 싶었지만 그럴 수도 없었다. 그러던 중 부사의 부름을 받았다. ‘소낙비는 피하고 보자’는 것이 유겸호의 평상시 생활 방편이었다. 농민이나 부사나 모두 피하고 싶었다. 그러나 이번 농민봉기가 끝난 후를 생각하면 부사의 부름을 회피하기도 어려웠다. 유겸호는 농민봉기를 준비하던 도회 준비모임 때부터 배후조종자로 이미 관아에 낙인찍혀 있을 것이 분명했다. 그의 입장에서는 이번 농민봉기가 원만하게 해결되어야만 후한이 없었기 때문에 부사의 요청을 거절할 수 없었다. 농민도회 지도부에서도 자신들과 같은 입장은 아니더라도 관아에 반감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었기에 별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이란 생각에 관아로 들어가는 것을 막지 않았다.

“사또와 제가 여러분들의 요구 사항에 대해 발표를 하겠습니다!”

유겸호가 금남루 문루에 서서 농민군들을 향해 말했다.

유겸호는 저녁나절 무렵 조관재 부사와 함께 금남루 문루에 나타나 중대한 결정 사항을 발표하겠다는 것이었다. 농민대표 자격도 없는 유겸호가 부사와 함께 결정된 사항을 발표한다는 것이 이상하기는 했지만 일단 들어보기로 했다.

“오늘 우장규 농민대장이 가지고 온 문서를 살펴보고 조사를 해보았소. 그런고로 그동안 관아의 환곡과 잡세들이 우리 고을민들에게 얼마나 많은 폐해를 끼쳤는지 알았소. 그러나 맹세코 나는 전혀 모르고 있었던 일이오! 조사 결과 고을민들을 괴롭히고 장마당을 배회하며 장꾼들의 등을 친 장본인이 관속이었다는 것도 알았소. 내 오늘 이 자리에서 그 자를 처단해 국법의 준엄함을 보일 것이오!”

청풍부사 조관재의 발표 뒤에 끌려나온 사람은 관사노 부출이었다. 부출이가 관속이긴 했지만 노비에 불과했다. 부출이가 관원 행세를 하며 사람들을 괴롭힌 것은 사실이지만 관사노 하나가 청풍 관내 고을민들의 등을 치고 핍박을 해 난리까지 나게 했다면 지나가는 개도 웃을 일이었다. 조 부사가 우습지도 않은 수작을 부리고 있었다.

“책임을 지려면 잘못을 저지른 놈이 져야지, 앰한 종눔은 왜 데리고 나와 수작이우!”

“부출이가 죄가 있다고 해도 좀도둑이고 심부름꾼에 불과하오. 죽이려면 관아 아전이나 향청의 아부꾼들이나 잡아다 모가지를 치시우!”

“맞소! 없는 죄도 만들어서 죄 없는 고을민들을 잡아다 볼기를 치고 주리를 트는 김개동이 같은 놈이나 목을 쳐 국법인지 국밥인지 보여 주시요!”

“사또! 우린 지금 충분히 겁을 먹었으니 우릴 겁주기 위해 부러 하는 짓이라면 공연히 애쓰지 말고 부출이를 놓아 주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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