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청주민예총 사무국장

[충청매일] 지인들과 저녁을 먹으며, 최근 불거진 스포츠계의 학교폭력 문제가 도마 위에 올랐다. 80년대 학창 시절을 보낸 연령대라 당시 학교 이야기로 화제가 번져갔다. 친구 간의 싸움도 잦았고 일명 조폭을 흉내 낸 학교 모임도 활개를 치던 때였다. 등교 시간이면 교문 앞에 교련복을 입은 선배들이 복장 단속을 하며 폭력을 일삼는 일이 당연하던 시대이기도 했다. 선생님도 대걸레 자루나 당구 큐로 체벌을 하던 시대였다. 지금 생각하면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체육 시간 배구공을 발로 차 선생님이 맞았다. 배구선수 출신 선생님은 학생들이 보는 앞에서 배구공을 발로 찬 학생에게 무차별 폭행을 가했다. 그 학생은 깁스할 정도로 다쳤고 부모와 함께 학교에 찾아왔지만, 폭력을 행사한 선생님은 여전히 학교에 출근했다. 복싱 선수 출신 선생님은 주먹으로 복부를 치거나 가슴을 치곤 했다. 한 대 맞으면 숨이 턱 막힐 정도로 충격이 왔다. 사랑의 매라고 하기에는 기분이 별로였다. 당시는 아무도 대항하거나 신고하지 않았다. 사회적 분위기는 선생님의 체벌에 관대했다.

중학교 때 육상을 했던 나는 선배의 폭력을 경험했다. 일명 기합이란 이름 아래 벌을 받거나 맞는 일이 종종 있었다. 우리 동기들은 폭력의 대물림을 근절하자며 서로의 상처를 보듬었던 기억이 있다. 폭력은 대학교에서도 군대에서도 존재했다. 이제는 사라졌지만, 군대 문화가 자리했던 대학교, 폭력이 일상이었던 군대 생활을 고스란히 경험했다.

그렇다고 학교폭력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왕따 문제는 여전히 존재하며, 학생 간의 폭력문제가 도를 넘어서고 있는 뉴스를 접한다. 청소년 범죄 문제는 단순하지 않다. 가정과 사회 문제가 종합적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배구계에 불어닥친 학교폭력의 후폭풍은 학생 간의 문제를 넘어 엘리트 체육이 관행으로 넘어간 그간의 복합적인 문제로 연결되어 있다. 축구 국가대표 감독의 비리와 철인삼종 선수의 죽음으로 밝혀진 코치와 동료 선수의 폭행뿐 아니라 아직 가시화하지 않은 상처는 많을 것이다. 자식이 운동선수를 꿈꾼다면 여유가 많지 않은 가정은 돈 문제부터 고민할 것이다. 돈도 배경도 없는 부모가 자식을 운동선수로 성공시키기란 하늘의 별 따기보다 어렵다. 특히, 인기가 많은 구기 종목의 경우라면 더하다. 유소년 축구 동아리 경기가 있는 날이면 선수 수만큼의 부모들도 함께한다. 누구는 극성 부모라 할 수 있겠지만, 부모가 경기장에 있어야 자식의 출전 기회가 주어진다고도 하고 따라다니며 뒷바라지하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인식되어 있다고도 한다. 소질 있는 아이는 선수로 진학하기도 하고 팀에서 스카우트하기도 한다. 이런 기회가 주어지려면 그만큼 극성을 부려야 한다.

이런 문제는 예체능계 전반의 문제다. 미술이나 피아노, 태권도 학원은 아이들의 성장에 긍정적인 기능을 하지만, 정서의 문제를 넘어 장래의 목표가 되는 순간 우리 사회는 관행이란 이름의 구렁텅이 속으로 들어오라 손짓한다. 우리 아이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돈과 극성적인 희생과 부조리한 관행을 눈감아주는 아량이 있어야 할 것이다.

피리 연주자를 꿈꾸며 예고에 진학한 아들은 코로나19로 인해 학교보다 집에 있는 시간이 많다. 방에 연습실을 마련해주니 마음이 한결 편하다. 그보다도 치열한 경쟁 속이 아닌 아무런 걱정 없는 집에 있으니 내일의 걱정보다 현재의 안정감이 더 좋다. 극성 부모가 되지 못하니 아들의 미래가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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