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꿈세상 정철어학원 대표

[충청매일] 나는 풍족했다. 재물도 많고 막강한 권력도 있다. 세상에 아쉬울 것이 없다. 그냥 오만하게 거침없이 살았다. 힘겨움, 외로움, 그리움이 무엇인지 행복, 나눔, 따듯한 정이 무엇인지 알지 못 했고 알 필요도 없었다. 세상 사람들 심지어 부모형제에게도 냉정하고 야멸찼다. 그렇게 한 생을 살았다. 나의 전생이다.

삶에 대한 생각이 깊을 때 한번쯤 상상해 돌아본 나의 전생이다. 전생이 그러했기에 조물주는 이번 나의 현생에서 힘겨움, 그리움, 따듯한 정 등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뼈저리게 가르쳐 주려는 모양이다.

며칠 전 장모님께서 작고하셨다. 장모님께서 뇌출혈 수술로 인하여 사람들을 거의 기억하지 못할 때도 셋째 사위는 기억하며 ‘바쁜데 왜 왔느냐’고 챙겨주시던 어머님께서 돌아가셨다. 장례를 모시며 나의 마음도 평정을 잃고 삶의 경계에 섰다. 마음이 어지럽다.

내세(來世)의 복을 빌며 잔을 올려 드렸다. 그 외엔 아무 것도 해 드릴 수 없다.

스티븐 호킹은 “뇌는 부속 부품이 망가지면 작동을 멈추는 컴퓨터라고 본다. 죽음이란 뇌의 구성요소가 고장나서 멈추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컴퓨터 고장에 천국이나 사후 세계는 없다. 그것은 어둠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을 위해 꾸며낸 동화 속 얘기일 뿐이다”고 단언했다. 그의 말대로 사후 세계가 없어 내가 올린 잔이 허망한 기원을 담은 잔이어도 좋다. 그냥 간절한 나의 바램이다.

스티븐 호킹이 인간을 컴퓨터에 비유함에 간과된 점이 있다. 컴퓨터는 부속과 부품 외에 소프트웨어인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소프트웨어가 없는 컴퓨터는 컴퓨터로의 의미가 없다. 컴퓨터는 그 외에 또 전기가 필요하다. 이는 인간이 육체와 영혼 그리고 기(氣)로 이루어짐에 비유할 수 있다.

소프트웨어가 다른 컴퓨터 기계에 들어가 전기를 불어 넣어 새로운 컴퓨터로 탄생하듯 인간도 영혼과 기를 이어 새로운 내세(來世)의 삶이 생겨나지 않을까 싶다. 나와 비슷한 생각의 어떤 이는 ‘기(氣)를 통해 난자에 영혼이 하나가 되어 새로운 생명으로 태어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에 나의 기원이 헛되게 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 본다.

공자는 사후 세계를 묻는 제자에게 “사는 것도 다 알지 못하는데 죽은 뒤를 어찌 알겠는가?”라고 말했다고 한다. 어찌 보면 그도 맞는 얘기다. 그 얘기는 ‘알 수 없는 사후 세계에 연연하지 말고 현세에 최선을 다 해야 한다.’는 가르침 같다.

내가 어머님 내세(來世)의 복을 기원하는 것도 현세에서 못한 부족함과 아쉬움에 대한 몸부림일 수도 있다. 옆에 계실 때 더 잘 했어야 했다.

세상 부모님들은 대부분 자식을 위해 평생을 산다. 자식을 위해 쓰러질 정도로 열심히 일한다. 부모에게 주어진 모든 시간의 우선순위는 자식이다. 자식들도 부모님의 그 사랑을 알기에 부모님께서 작고하신 후에도 평생을 그리워하며 가슴속에 묻고 산다. 하지만 마음에 천년을 담고 사는 것보다 부모님이 옆에 계실 때 한 번 찾아뵙는 게 더 낫다. 자식이 이랬어야 함을 깨달았을 땐, 자식이 없는 시간을 억지로라도 냈어야 함을 알았을 땐 이미 부모님은 안 계신다. 지금 부모님이 계시다면 늦지 않다. 다행이다.

우리들의 삶도 그와 같다. 지금 삶이 아무리 외롭고 힘들어도 불확실한 사후 세계보다 낫다. 지금 이 삶이 내 삶이다. 이 내 삶의 1분 1초가 소중하다. 즐거워도 고통스러워도 소중하다. 살을 에는 눈보라도 따스한 햇살도 의미가 있는 나의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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