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그런 요구 조건이 있으면 관아에 등소를 할 일이지 어째서 농민들을 선동해 모반을 일으켰는고?”

“등소를 해도 해결되지를 않으니 고을민들이 견디다 못해 일어선 것 아니오?”

“해결을 하고 안 하고는 관아의 일이며 또한 해결이 안 되는 것은 등소 내용이 가당치도 않기 때문이다. 그런 것을 관아 탓만 하면 되겠느냐. 네놈이 내게 준 문서 내용도 그렇지 않으냐? 모든 세금을 모두 탕감해 달라고 하면 나라 살림은 무엇으로 하겠느냐?”

“사또, 그 말이 아니잖소! 세금을 내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고 고을민들을 죽이는 나랏법에도 없는 과중한 거짓 세금을 없애달라는 것이 아니요?”

“세금에 거짓 세금이 어디 있으며, 나랏법에 없는 세금이 어디에 있느냐. 어떤 세금이든 관아에서 다 필요한 것이 있으니 거두는 것이다. 그리고 각 고을에서 거둬들이는 세금은 마을 유지들이 추천되어 각 마을의 사정을 고려하여 향청에서 정하는 일을 어찌 과중하다고 말하는가?”

“그 향청이 어디 농민들 사정을 눈곱만큼이라도 생각하는 곳이오. 관아 앞잡이지!”

“이놈아! 너희들 마을 유지들을 어찌 관아 앞잡이로 몰아부치는고?”

“그들이 대부분 관아 아전노릇을 했거나 양반·지주들이니 뭐라도 얻어먹으려고 고을민들 사정보다 관아 눈치를 더 보는 늙은이들이 아니요? 내일이면 저승길 떠날 산송장같은 늙은이들이 모인 향청이 어찌 마을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겠소?”

“그건 네놈들 생각이고, 내 생각에는 오랜 경륜으로 그들보다 고을민들의 사정을 잘 아는 사람들은 없다!”

“그런 오랜 경륜으로 관아 앞잡이가 되어 고을민들 피나 빠는 향청은 없애야 하오이다!”

“그것도 나라에서 할 일이지, 네놈들이 왈가왈부할 일이 아니니라!”

부사와 농민대장의 의견은 달라도 너무 달랐다.

“더 이상 되지도 않는 소리로 시간을 낭비할 수는 없소! 그 문서는 도회를 통해 여러 고을민들의 뜻이 담긴 것이니 부사가 진정 고을민을 위한 목민관이라면 살펴보고 결과를 답해 주시요!”

농민대장 우장규가 협상을 중단하고 일어섰다.

“관아를 둘러싸고 있는 농민군을 먼저 해산하고 나를 여기서 나가게 해주면 충주관아로 가 목사와 상의를 해보겠다.”

조관재가 우장규에게 조건을 내세웠다.

“속임수요. 우리가 해산하면 그 다음엔 우리 지도부를 잡아들여 목을 칠 속셈이 아니겠소이까? 나는 이미 목을 내놓고 시작한 일이니 언제든 가져가시오. 그러니 약속부터 해주시오!”

“내 독단으로 결정할 사안이 아니다!”

“사또 관할인데, 왜 처결을 못 한다고 발뺌만 하는 것이오이까?”

“네놈이 관아 일을 뭘 안다고 떠드는 게냐! 내가 너희들 뜻을 받아들여 완문을 써준다면 다른 고을에도 관례가 되는 것을 네놈이 알기나 하는가!”

조관재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목민관이라는 자들이 일신상 안위를 위해 고을민들의 고충을 모른 척 한다면 그것은 소임을 다한다 할 수 없을 것이요. 그러니 내 귀에는 모든 게 다 핑계로 들릴 뿐이요!”

“뭐엿! 이놈이?”

조관재 청풍부사가 분을 참지 못해 엉덩이를 들썩거리며 안즈락서락 했지만 농민군대장 우장규를 어쩌지 못했다. 그의 뒤에는 운집해 있는 수천의 농민군이 금남루 앞에 대기하고 있었고 그를 건드렸다가 일어날 수 있는 불상사가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조 부사는 될 수 있는 대로 문제가 자신의 관내 밖으로 흘러나가지 않고 조용하게 마무리되기만을 바랐다.

“추후 일어나는 불상사는 모두 사또의 불찰이오!”

우장규가 겁박을 주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결국 두 사람의 만남은 아무런 진전도 없이 결렬되고 말았다.

우장규가 관아에 들어가 부사를 만나고도 아무런 성과 없이 돌아오자 잔뜩 기대를 걸고 기다리던 농민군 진영의 실망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특히 농민군들 중에서도 초군과 사노군들은 가장 빈궁한 계층으로 양반·지주들과 관의 수탈체제 속에서 많은 피해를 입은 계층이었다. 따라서 이들은 농민군들 중에서도 가장 열성적이고 가장 과격한 투쟁을 주장했다. 초군과 사노군들은 당장 금남루 문을 부수고 부사와 아전들을 잡아 도회장으로 끌어내자고 들고 일어섰다. 그러자 다른 농민군들도 합세를 해 관아로 쳐들어가자고 들썩거렸다. 금방이라도 난리가 날 것처럼 도회장 분위기가 긴박하게 돌아갔다. 그도 그럴 것이 도회를 시작한 지 벌써 나흘이 지나가고 있었지만 고을민들이 원하던 결과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니 조급해질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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