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테라피 강사

[충청매일] 무력하고 여린 생명체에게 엄마는 탯줄을 준 존재를 넘어 사는 동안 세상에서 받아야 할 따뜻한 목소리, 눈짓, 체온, 보살핌, 호의의 상징이기도 하다. 여린 목숨에게 엄마는 밥이고 옷이고 이부자리이고 시간이고 돈이고 마음이고 정성이다. 심지어는 적절한 햇빛, 바람, 꽃, 풀도 아이의 성장을 돕는다. 아이는 보살핌을 양분삼아 근신없이 자란다.  

‘그 말 내가 전할게’는 길상효 글·송은경 그림의 가슴 뭉클해지는 이야기다. 동일본 지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작은 바닷가 언덕에 누군가가 가져다 놓은 전화기, 바람의 전화. 그것을 향해 다가가는 소녀가 있다.

 “엄마...... .”

 “나는 잘 지내.”

전화기는 어디로도 연결되지 않지만 아이는 어딘가에 있을 그리운 엄마에게 말을 건다. 어린 여자아이가 지진으로 모두가 엉망진창이 되었는데 잘 지낼 리가 없다. 사라져버린 엄마에 대한 걱정과 잘 살지 못하는 슬픔을 응축한 표현이지만 엄마에게 그 말은 가 닿지 못하고 당연히 답신도 들을 수 없는데, 아이의 절실한 마음을 아는 바람은 기꺼이 전달자가 되어주마 한다.

내가 전할게, 그 말. 대신 시간을 좀 주겠니? 바람은 소녀가 일상을 회복하도록 서서히 도와준다.

벌과 나비가 못다 옮긴 꽃가루, 멀리멀리 퍼뜨리고 갈 수 있게. 강가에 나온 아이들의 연도 높이 날려주고. 걱정하지 마. 그 말, 내 품에 꼭 안고서 갈게. 초록빛 보리밭 사이로 김매는 고단한 이의 땀도 다시 식히고 쏟아지는 장맛비를 뚫고 부지런히 갈게.

바람의 위로는 네가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직설이 아니라 아이가 그것들을 보도록 하는 완곡어법이다. 바람이 그 일들을 하고 난 뒤에 자신의 말을 엄마에게 전해 줄 수 있다면 바람이 하는 일들을 보면서 기다리는 일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잘 지내.”

그 말은 잘 지낼 수 없음을 나타내기도 하고, 지내야 하는 당위이기도 하고, 지내고 싶은 절절함이기도 하지만 개인의 힘을 넘어서는 지진같은 자연재해나 가족의 죽음이라는 숙명적 이별로 입은 슬픔은 내상이 깊어 벗어나기 어렵다. 황망하고 당혹스러운 슬픔을 알아주는 것, 슬플 시간을 주는 것, 슬퍼도 되는 것은 얼마나 당연한가.

아이에게 얼른 자라라는 말이 격려는 될 수 있어도 가능하지는 않다. 사람이 마음 깊이 입은 내상으로 허덕이는데 얼른 벗어나라는 윽박보다 애도할 시간을 주선하는 일이 훨씬 호의적이다. 이 이야기는 동일본 대지진을 배경으로 하지만 이웃 나라 만의 이야기가 아니기에 더 절실히 가슴에 와 닿는다. 우리도 세월호 같은 대형 참사를 겪었다. 무엇에도 바꿀 수 없는, 자식과 형제들을 차디찬 바다에서 구해내지 못한 죄책감은 나는 잘 지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시절이 와야겠다. 책임지는 이의 문제도 마음의 문제도 모두 명징해 지는 어느 때가 앞당겨지면 좋겠다. 바람의 말은 슬픔에서 헤어나오려면 나날을 잘 보내고 계절이 흐르는 대로 지내다보면 살아지는 날이 오기도 한다는 위로와 격려로 읽을 수 있겠다. 상처는 없어지지 않아도 상흔은 서서히 옅어질 것이다. 바람의 말처럼 참을성 있는 위로를 우선 내상입은 자신의 마음에 건네보는 것도 방법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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