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이튿날은 동이 트기도 전부터 농민군들이 청풍관아의 정문인 금남루 앞에서 도회를 열기 위해 모여들었다. 이제는 농민군들도 제법 체계가 잡혀가고 일사분란하게 자신들의 소임에 맞춰 움직였다. 좌군과 우군, 그리고 중군이 관아를 감싸고 있는 성벽을 겹겹이 둘러쌌다. 금남루 앞에도 농민도회 지도부와 수많은 농민군들이 운집해 있었다. 그러나 그 행색들이 초라하고 어색하기 이를 데 없었다. 농민군들이 함성을 지르며 관아 문을 열 것을 요구했지만 청풍부사 조관재는 금남루 문을 굳게 닫은 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금남루 성벽 위에서는 군졸들만이 창을 든 채 운집해 있는 농민군들의 동태를 살피고 있었다. 농민대장 우장규가 직접 조관재 부사를 만나기 위해 관아정문인 금남루 앞으로 나아갔다.

“농민군 대장이 부사를 만나러 왔으니 전하거라!”

좌군장 이창순이 성벽 위의 군졸들에게 소리쳤다.

잠시 후 금남루의 문루 위에 형방 김개동이가 나타났다.

“파라는 흙은 안 파고 관아에는 무슨 일인고?”

형방 김개동이가 금남루 문 앞에 모여 있는 농민군들을 보며 비아냥거렸다.

“저런 때려죽일 놈!”

좌군장 이창순이 불끈했다.

“부사한테 요구조건을 가지고 왔소!”

우군장 하익수가 속을 누그러뜨리며 차분하게 찾아온 뜻을 전했다.

“농투성이가 관아에서 하라는 대로 땅이나 파면되지 무슨 되잖은 요구란 말이냐!”

김개동이는 계속해서 농민군 지도부를 향해 이죽거렸다.

“저 놈에 새끼가 실성을 했나. 지금 판세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나 알고 혓바닥을 놀리는 거여!”

이창순이 분을 참지 못해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했다.

“거기 가운데 선 놈이 반란군 수괴냐?”

김개동이가 턱으로 농민대장 우장규를 가리키며 물었다.

“저 놈의 새끼 모가지를 당장!”

“반란군이 아니라 내가 농민군 대장 우장규요!”

“대장인지 막창인지 네놈만 들어오너라!”

형방 김개동이 농민대장 우장규만 들어올 것을 허락했다.

“알았소!”

우장규가 대답을 했다.

“안됩니다!”

농민군 지도부에서 위험하다며 말렸다.

“저들도 섣불리 나를 어쩌지는 못할 것이오!”

우장규가 지도부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금남루 문이 열리자 혼자 관아 안으로 들어갔다. 김개동이 동헌 마당을 가로질러 부사 집무를 보는 금병헌으로 우장규를 데리고 갔다.

“사또, 농민군 수괴를 데리고 왔습니다.”

김개동이가 금병헌 뜰아래 서서 농민대장 우장규가 왔음을 알렸다. 한참 동안 기척이 없더니 안에서 헛기침 소리가 들려왔다. 김개동이가 우장규를 데리고 방안으로 들어갔다. 조관재 부사는 우장규가 찾아왔는 데도 눈길도 주지 않은 채 자기 일에만 몰두했다. 그러더니 한참을 더 자기 일을 하다 고개를 들었다.

“어째 날 보자 했는고?”

“고을민들 요구조건을 가지고 왔소이다!”

“말해보게.”

“농민들 요구조건을 적은 문서요. 거기에 수결을 해주시오!”

우장규가 문서를 조 부사에게 넘겨주었다.

“읽어보게!”

조관재가 옆에 있던 형방 김개동에게 문서를 넘겼다.

“첫째, 모든 농민들의 환곡을 탕감해줄 것! 둘째, 관아에 있는 수취 장부를 모두 불태울 것! 셋째, 향청에도 농민대표를 넣어줄 것! 넷째, 농민을 탐학한 관리와 양반·지주를 치죄할 것! 그리고 이 모든 사항을 문서로 약속해 줄 것 등이옵니다.”

“숫제 농군들이 관아 일을 다아 보는구먼!”

형방 김개동이가 읽고 난 문서 내용을 모두 듣고 조관재 부사가 ‘피식’ 웃었다.

“그러게 말입니다요, 사또!”

김개동이가 조 부사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그리고 이건 호조 일이 아니던가?”

조관재는 있지도 않은 호조 핑계를 댔다.

“그렇사옵니다.”

김개동이가 실실거리며 또다시 맞장구를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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