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북진여각의 형편도 매우 어려운데 다시 또 부탁을 한다는 것이 염치없는 일 아니오? 지난번에도 그렇게 도와주었는 데…….”
농민대장 우장규가 선뜻 내키지 않는 눈치였다.
“우 대장, 지금 염치고 뭐고 따질 때오리까? 또 장사꾼들은 제 어미애비도 속인다는 데 그런 죽는 소리를 어떻게 믿습니까?”
좌군장 이창순이 상대방 입장은 아랑곳하지 않고 나오는 대로 지껄여댔다.
“좌군장은 어찌 그렇게 생각이 없소?”
우장규가 차대규의 표정을 살피며 무참해 했다.
“괜찮소이다. 우 대장께서는 제게 완문 하나만 써주시오.”
“무슨 완문을?”
“지금 모든 고을이 어수선해져 있으니 객주들은 철시를 하고 불안해하고 있소이다. 그러니 우 대장께서 어떤 난리가 나도 객주집은 털지 말라는 완문을 써주시면 내가 그것을 가지고 최 대행수께 가서 북진여각 관할의 모든 객주들에게 양곡을 내라고 청을 넣어 보겠소이다. 그리고 읍성도회장으로 옮기는 것도 보부상들과 동몽회원들을 동원하면 문제가 없을 듯 하오이다.”
“그렇다면 내 당장 약탈을 금지하는 완문을 써주겠소!”
우장규 대장이 쾌히 허락을 했다.
이미 북진여각의 최풍원 대행수는 농민도회를 위해 일만 냥의 돈과 양식을 내놓았었다. 농민지도부에서도 그것으로 충분히 도회를 이끌어 갈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워낙에 많은 농민들이 도회장에 모이자 자금이 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더 큰 문제는 앞으로 언제까지 이 도회가 지속될지 모른다는 점이었다. 농민지도부 입장으로서는 한시라도 빨리 청풍부사의 약조를 관문서로 받고 해산을 하면 되겠지만 조관재는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었다. 농민지도부로서는 이 두 가지가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문제였지만, 도회가 거듭될수록 속출되는 문제는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북진에서 도회가 시작된 후 청풍 읍성도회가 있기까지 처음으로 농민지도부에서는 당면한 여러 과제들이 다각적으로 논의되었다. 지도부에서는 농민군들의 편제와 기강부터 잡고, 청풍부사에게 요구조건을 전달하고 담판을 지을 계획을 세웠다. 그런 후 농민대장 우장규는 휘하 지도부들과 함께 도회장의 연단에 섰다.

“나는 농민대장 우장규요. 오늘 이 시각부터 여기에 모인 고을민들은 농민군이오. 따라서 여러분들은 이제부터 농민군으로 대접을 받을 것이고 군령에 따라야 할 것이오! 오늘부터는 일체의 약탈을 금하오. 남의 집에 불을 놓지도 말 것이며, 남의 물건을 함부러 빼앗지도 말 것이오. 만약 사사로이 남에게 해를 입히는 자가 있으면 군율에 따라 엄중하게 다스릴 것이오! 우리는 도적이 아니고 관아와 양반들의 잘못된 폭정을 고치려고 일어선 농민군들이오. 우리가 저들과 똑같이 행동한다면 우리 또한 저들과 다를 게 뭐가 있겠소? 우리는 폭도가 아니라 농민군입니다. 모든 행동 하나하나를 남들이 본받게 합시다!”

“옳소! 옳소!”

“만세! 우리 대장 만세!”

농민대장 우장규의 일장 연설에 화답하는 농민군들의 함성이 떠나갈 듯 읍성 내에 퍼졌다. 그때 갑자기 읍성 북쪽에서 함성이 들려오며 검은 연기가 하늘로 치솟았다. 도회장에 모여 있던 농민군들이 술렁거렸다.

“좌군장이 무슨 일인가 알아보고 오시오!”

좌군장 이창순이 농민군을 데리고 연기가 솟는 곳으로 달려갔다. 한참 후 한 무리의 사람들이 좌군장에게 잡혀왔다.

“대장, 이놈들이 아무집이나 들어가 농민군을 자처하며 물건을 약탈하고 불을 지르고 있어 잡아왔습니다.”

“너희들은 뭐하는 놈들이냐?”

“저희는 읍상리 마름 조순이 부리는 머슴들과 저자거리를 떠돌던 무뢰배들입니다.”

“그런데 왜 남의 집에 불을 지르고 물건을 빼앗았느냐?”

“저희 주인께서 돈을 주며 농민군에 참여하라고 했습니다요.”

“그런데 왜 농민들 집까지 들어가 행패를 부렸느냐?”

“그게…….”

조순 네 머슴들이 머뭇거렸다.

“어서 이실직고하지 않겠느냐?”

좌군장 이창순이 눈을 부라리며 닦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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