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명
온깍지활쏘기학교 교두

[충청매일] 2019년 4월, 인천 청룡정에 갔습니다. 오랜만에 ‘인천전통편사놀이’가 열린다고 해서 2002년에 이어 두 번째로 답사하러 간 것입니다. 청룡정은 계양산 북쪽의 끝자락에 있는 활터입니다. 마치 긴 치마를 감아 앉은 여인의 그 치맛자락 끝에 놓인 듯했습니다. 신록으로 물든 2차선을 따라 언덕배기를 넘어가니 주차장까지 널찍이 갖춘 활터가 나타납니다.

내리자마자 풍악 소리가 들립니다. 그 소리에 빨려들 듯이 발걸음도 가볍게 계단을 올라갔습니다. 반가운 얼굴들과 인사하고 잔치 음식을 먹으며 편사 구경을 했습니다. 경기민요 12잡가가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가운데 한량이 과녁을 맞히면 그 즉시 음악이 멈추고 기생획창이 시작됩니다. “김의관 영감 삼시에 관중이요! 지화자, 지화자, 지화지화지화자, 지화자, 지화자.” 이런 음악이 온종일 이어집니다. 한순간도 쉬지 않고 창을 하는 소리꾼들의 내공이 정말 대단합니다.

점심을 먹고 나서는 뒤늦게 구경에 합류한 백광찬 접장과 함께 활터 옆에 마련된 텐트 아래 의자에 앉아서 과일을 먹으며 구경을 이어갔습니다. 비탈을 깎아 만든 활터는 위쪽에 개나리와 잣나무를 비롯한 여러 나무를 심었고, 아래쪽에는 벚나무를 나란히 심었습니다. 벚나무는 마침 꽃이 막 지려는 찰나여서, 바람이 산 아래에서 밀어 올리자 그 바람결에 벚꽃 잎이 무수히 날려 활터 하늘로 날아오릅니다. 쩌렁쩌렁 울리는 경기민요 유산가 가락과 한바탕 어울리며 만국기 아래로 떨어지는 꽃잎을 보며, 이곳이 무릉도원이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었습니다.

사대 뒤에서 한참을 구경하고 온 백 접장이 흥을 아직도 이기기 어려운지 의자에 앉아서 손과 발을 까딱거립니다. 이른바 수무족도(手舞足蹈). 그러더니 2순이 끝나고 사대 앞 광장으로 나와 춤추는 한량과 소리꾼들을 보며 백 접장의 고품격 춤 평가가 나옵니다.

“교두님, 저기 춤추는 사람들 보니까 가운데 나이 드신 여자분 있잖아요? 그 분의 춤이 제일 자연스러운 거 같아요. 춤이 손만 움직이는 게 아니라 어깨부터 움직이고, 몸 전체가 자연스럽게 동작이 이루어져요. 그런데 한량 중에서는 춤을 제대로 추는 사람이 거의 없네요. 아무래도 교두님이 한 번 오셔서 춤 강의를 해야겠어요.”

이런 평가를 듣는 저도 깜짝 놀랍니다. 10여 명이 한꺼번에 어울리는 군무인데, 그것 자체가 마치 꽃잎 하나하나가 움직이는 것 같습니다. 사람마다 춤추는 수준이 각기 다르지만, 그들이 모여서 한 춤마당을 이룹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오랜 경력인 박봉임 명창의 춤사위에 백 접장의 눈길이 머문 것이었습니다.

백 접장이 이런 얘기를 하는 것은, 몇 년 전에 청주에서 온깍지 편사를 할 때 제가 춤 강의를 잠깐 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편사에 소리꾼을 부른 것이 2번째였는데, 처음 편사 때 사람들이 춤추는 것을 굉장히 어려워해서 우리 춤의 원리를 간단히 설명한 적이 있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사람들이 한결 부담 없이 춤추던 기억을 백 접장이 떠올린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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