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나는 구담에서 농민군을 이끌고 온 이중배라 하오이다.”

사내가 허리를 굽혀 인사를 했다. 구담은 청풍에서 동쪽으로 세 마장쯤 떨어진 마을이었다.

“고생했소이다! 나는 농민대장 우장규요.”

우장규가 이중배의 손을 맞잡았다.

“저자는 누구요?”

우장규의 옆에 있던 좌군장 이창순이 땅바닥에 꿇린 채 벌벌 떨고 있는 사내를 가리키며 물었다.

“저 자는 우복이란 산지기요!”

이중배가 대답했다.

“산지기를 왜 잡아왔소?”

“저 놈이 얼마나 악독한지 인근 마을에 원성이 자자해 처단하려고 잡아왔소이다.”

이중배의 이야기는 이러했다.   

이중배가 구담에서 농민군들을 규합해 청풍 읍성으로 내려오던 중 까치골을 지나게 되었다. 그런데 마을사람들이 한결같이 산주 차홍걸과 산지기 우복이를 징치해줄 것을 간절하게 바랐다. 까치골은 구담에서 반 마장도 떨어지지 않았지만 워낙에 깊은 산골이고 이웃과 왕래가 적어 바깥에서는 그곳 사정을 알 수가 없었다. 까치골은 논이라고는 전혀 없고, 손바닥만 한 밭뙈기도 제대로 구경하기 힘든 심심산골이었다. 그러니 이 마을에 사는 사람들은 대대로 산을 뜯어먹고 살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코재를 넘으면 두어 마장 거리에 적성장이 있어, 아낙들은 나물을 뜯고 남자들은 나무를 해 근근이 목구멍에 풀칠을 하며 목숨줄을 이어오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이 산주인이라며 차홍걸이 나타났다. 그는 산지기 우복이를 앞세우고 나타나 산 입구마다 금줄을 치고 출입을 막았다. 산에 목숨줄을 걸고 살아왔던 까치골 사람들은 하루아침에 생계가 끊기게 되자 차홍걸을 찾아가 선처를 바라며 읍소도 해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청풍관아에 답답하고 억울한 사정을 고변도 해봤지만 그 또한 소용이 없었다. 산 입에 거미줄 칠 수는 없어 까치골 사람들은 함께 작당을 해 금줄을 뚫고 들어가 나무를 해다 몰래 장에 내다 팔았다. 이를 안 산주 차홍걸이는 마을사람들을 한꺼번에 관아에 고발했다. 관아에서는 벌목이 금지된 곳에서 나무를 했다하여 까치골 사람들을 모조리 붙잡아다 곤장을 쳤다. 법이 아무리 무서워도 주린 배보다 무서울 수는 없었다. 곤장을 맞아 볼기가 터져도 우선 당장 먹지 않고는 살 수 없는 법이었다. 그렇다고 평생 산을 뜯어먹으며 살아온 사람들이 까치골을 떠나 다른 곳으로 떠날 수도 없었다. 하는 수없이 산주의 눈을 피해 몰래몰래 산에 들어가 나무를 하거나 약초를 켈 수밖에 별다른 도리가 없었다.

산지기 우복이는 산주 차홍걸보다도 더 악독한 놈이었다. 우복이는 길목을 지키고 있다가 먹고 살기 위해 코가 땅에 닿을 듯 가파른 코재를 등골이 빠지게 올라온 마을사람들의 나뭇짐을 빼앗아 자신이 장에 팔아 착복을 했다. 심지어 나물을 캐 장에 가는 아녀자들을 고개마루에서 지키고 있다 겁박을 주어 욕보이기까지 했다. 까치골 사람들의 원성이 하늘을 찔렀다. 그러나 관아와 결탁한 산주 차홍걸이와 그 하수인 우복이를 어찌할 방도가 없었다. 그러던 중 때마침 청풍을 향해 진군하던 농민군들을 만난 까치골 사람들이 이중배에게 억울함을 호소했다. 농민군들은 두 사람을 붙들어다 곤장을 치고 산을 예전처럼 까치골 사람들에게 돌려주겠다는 서약을 받은 뒤 풀어주었다. 그런데 까치골 사람들이 산주는 풀어줘도 우복이는 그동안 저지른 패악이 흉악하여 절대로 풀어줄 수 없다고 해서 농민도회로 끌고 왔다는 것이었다.

“우 대장, 저 놈을 어찌 할까요?”

이중배가 우장규의 의향을 물었다.

“당장 모가지를 뎅강 날려버립시다!”

이창순이 목 자르는 시늉을 했다.

“제발 살려주시우!”

우복이가 묶인 채 허리를 구부려 이마를 땅에 조아리며 애걸했다.

“종놈이나 다름없는 산지기 주제에 그깟 것도 감투라고 마을사람들에게 패악을 행하였으니 무슨 염치로 살기를 바라겠느냐!”

우장규가 산지기 우복이를 내려다보며 호령했다.

“대장님 살려만 주시면 무슨 일이든 다 하겠나이다. 그러니 제발 목숨만!”

우복이는 거의 혼이 나간 채 필사적으로 빌었다.

“좌군장! 그놈을 베어버리게!”

우장규가 이창순에게 눈짓을 하며 명령했다. 이창순이 칼을 높이 들었다. 와글와글 시끌벅적하던 도회장이 일순 조용해졌다. 이창순의 칼이 허공을 날았다. 이를 지켜보던 고을민들의 입에서 짧은 비명이 터져 나왔다. 동시에 우복이를 묶고 있던 밧줄이 끊어졌다. 사람들이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동시에 우뢰와 같은 박수소리와 함께 환호성이 도회장을 가득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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