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프로배구 선수들에 대한 ‘학교폭력(학폭)’ 폭로가 잇따르면서 체육계 폭력 문제가 또다시 사회적 문제로 비화되고 있다. 특히 연예계에서 시작된 학폭 파문은 체육계를 거쳐 민간기업, 정부기관 등으로 확산되면서 일반인들의 ‘학폭 미투(Me Too)’도 잇따르고 있다.

최근 학폭 문제는 지난달 한 음악 경연 TV 프로그램 참가자 중 한 명에게 학창 시절 괴롭힘을 당했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불거졌다. 해당 참가자는 “과거 자신의 잘못에 대한 모든 책임을 지겠다”며 학폭 사실을 인정하고 결국 프로그램에서 자진 하차했다.

체육계 학폭 미투는 여자 프로배구 선수 이재영·이다영(흥국생명) 자매의 학창 시절 폭력 사태로 촉발됐다. 두 선수는 학폭 사실에 대해 사과했지만 비판여론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SNS를 통해 올라온 사과문 한 장으로는 진정성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급기야 흥국생명이 이재영·다영 자매에 대해 ‘무기한 출장 정지’ 처분을 내리고, 대한배구협회도 국가대표 선발 자격을 무기한 박탈했다. 남자 프로배구 OK금융그룹의 송명근·심경섭 선수도 학폭 과거가 폭로돼 더는 경기에 나오지 않기로 했다.

그러나 무기한 출전정지라는 징계만으로 피해자들이 용서하고, 국민들이 납득하겠느나는 지적이 많다. 무기한이라는 개념이 모호해 평생 선수로 뛰지 못할 수도 있지만, 다음 시즌 코트에 복귀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과거 무기한이라는 조건을 붙여 징계를 받았음에도 어느 시점엔가 슬그머니 복귀한 사례는 부지기수다. 학폭을 근절하는 상징성 차원에서라도 좀 더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

체육계의 폭력 사건은 잊을 만하면 되풀이되고 있다. 이는 선수들만의 문제가 아닌 실력 위주의 체육계 풍토가 빚어낸 결과다. 성적 지상주의인 한국에서 선수들은 학생 시절부터 실력 향상을 핑계로 벌어지는 체벌과 폭력에 순응해야 하는 환경에서 자랐다. 설사 피해를 호소해도 학교장 등 관리자는 외면했고, 오히려 신고자가 왕따를 당하는 수모를 당한다.

이런 현실은 2019년 국가인권위원회가 실시한 ‘학생선수 인권상황 전수조사’에서도 잘 나타난다. 이 조사에 따르면 초·중·고교 선수 중 신체·성 폭력을 경험하고도 신고하지 않은 경우는 79.6%에 달했다. 더욱이 초등학생 선수의 경우 38.7%가 폭력 피해를 당하고도 ‘더 열심히 해야겠다’ 생각했다고 하니 어이가 없다. 학폭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어렸을 때부터 체벌에 대한 경각심을 높여야 하는데 교육 시스템이 아예 작동되지 않고 있음을 보여준다.

스포츠 인권 보호를 강화하기 위해 개정된 국민체육진흥법 및 시행령, 시행규칙이 19일부터 시행된다. 이 개정령은 지난해 6월 가혹행위를 견디다 못해 세상을 떠난 고 최숙현 선수 사건을 계기로 이뤄졌다. 체육인 인권침해·비리 즉시 신고 의무 부과, 신고자·피해자 보호 조치 강화, 가해자 제재 및 체육계 복귀 제한 강화, 상시적 인권침해 감시 확대 및 체육지도자 인권교육 강화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이 법의 시행만으로 체육계 폭력이 쉽사리 근절되진 않을 것이다. 그동안에도 성폭행이나 폭력 사건이 터질 때마다 온갖 대책이 나왔지만 그뿐이었다. 아무리 실력이 뛰어난 지도자와 선수도 인성을 갖추지 못하면 스포츠계에 발을 붙일 수 없다는 인식 개선을 작업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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