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나도 농민도회의 수장이 될 생각은 없소! 그러니 우 장군을 천거하시오.”

그때 유겸호가 스스로 수장 천거를 사양했다. 하지만 상민이나 다름없는 이창순에게 멸시를 당한 유겸호는 마음이 상당히 상해 있었다.

농민도회 지도부의 수장 자리가 우장규로 결정되자 조직 구성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긴급하게 소집된 지도부의 모임에서는 우장규를 농민군 대장으로 삼고, 도회에 모인 고을민들을 청풍관아를 중심으로 강 위와 강 아래, 강 건너로 구분하여 마을을 단위로 나누었다. 그리고 좌군장에 이창순, 우군장에 하익수, 중군장에는 북진여각 제천객주 차대규를 임명했다. 차대규 객주는 극구 사양을 했지만 중군에 해당되는 지역이 제천과 한 마을이나 다름없어 오래전부터 이곳 마을사람들과 관계가 밀접했고, 객주조직을 운용하기 위해서였다.  또한 북진여각의 최풍원과 원활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인물이라는 이유에서였다.

농민도회 지도부의 조직과 집회에 모인 고을민들의 편성이 끝나자 농민대장 우장규가 좌군장, 우군장, 중군장을 대동하고 도회장에 나타났다.

“여러분, 오늘부터 우리 농민도회를 원활하게 통솔하기위해 조직을 새로이 하였소! 새 지도부의 수장으로는 지금까지 농민대표로 활약해 온 우장규 장군을 농민군 대장으로 추대했소이다. 그리고 우리 고을민들은 일단 좌군과 우군, 그리고 중군으로 나누었소. 좌군장에는 이창순, 우군장에는 하익수, 중군장에는 차대규가 임명되었소. 모두들 농민도회 지도부를 함성과 박수로서 맞이합시다!”

우군장 하익수가 새로운 지도부의 출발을 알리자 도회장에 모여 있던 고을민들이 일제히 함성을 지르며 박수로 환영했다. 청풍읍성이 떠나갈 듯했다. 비봉산이라도 무너뜨릴 것처럼 도회에 모인 고을민들의 기세가 대단했다.

“그럼 지금부터 여기 모인 고을민들도 삼군으로 나눌 테니 잘 듣고 앞으로는 모든 행동을 자기가 속한 삼군의 지시에 따르기 바라오. 먼저 청풍읍내와 교리, 수산 내동·괴곡·구곡·오티·수리·율지리와 덕산 성내·고분재·용바위·억수·후촌리는 우군, 양평·황석·후산·도곡과 한수 덕곡·송계·공이동은 좌군, 북진·실리곡·양평과 금성의 구룡·대장리·적덕·활산리는 중군이오. 우군은 청색기, 좌군은 홍색기, 중군은 황색기니 모두들 자기가 속한 깃발 뒤로 대오를 맞추시오!”

우군장 하익수가 명령을 내리자 삼삼오오 중구난방으로 떼를 지어있던 고을민들이 자신들이 속한 깃발 아래로 모여들었다. 고을민들이 깃발별로 정돈되자 마구잡이로 몰려있던 종전과는 사뭇 다른 면모를 보였다.

“자, 다시 도회를 시작합시다. 누구든 기탄없이 자신의 의견을 맘껏 말하기 바라오!”

농민도회 우장규 대장이 깃발 아래 도열해 있는 고을민들에게 소리쳤다.

“수산 불구실에서 온 천구요. 난 지난 봄 보릿고개에 아이 둘과 노모까지 셋을 잃었소! 아새끼가 하나 남았지만 그것도 내께 아니오. 하도 송기를 긁어다 먹였더니 똥구멍이 막히고 온몸에 부황이 들어 살아나기는 틀렸소. 그런데 며칠 전 북진장에 왔다가 이웃 사람이 여기 오면 곡식을 준다고 하기에 왔소. 어차피 살아나기는 힘들겠지만 배라도 한번 불리게 먹여 보내면 내 맘이라도 좀 편할까 해서 ….”

불구실에서 왔다는 중년의 천구는 아이를 생각하니 서러움에 목이 메여 끝내 말을 잇지 못했다.

“집에 기르던 가축이 말라도 애가 타는 법인데 어린 새끼가 눈앞에서 번연히 죽어가는 데도 먹일 게 없어 보고만 있는 부모 심정이 어떻겠소?”

“개놈의 새끼들! 그것들은 사람이라 할 수도 없소! 나는 한수 둠벙골에서 온 팔수라 하오. 우리 마을은 산 밑에 물 나는 둠벙이 있어 이 나이 먹도록 가뭄이라고는 모르고 살아왔소. 그런데 이번 가뭄에는 둠벙조차 바닥을 드러냈다오. 마을 노인들은 나라에 큰 변고가 생길 징조라며 걱정을 했지만, 농군에게 논밭에 작물이 다 타죽는 변고보다 더 큰 변고가 뭐가 있겠소? 농군에게 작물은 자식 매 한가지요. 벌겋게 타들어가는 전답을 보는 농군들은 속이 바싹바싹 타들어 가는 데, 글쎄 우리 마을 맹주경이 부자는 들판에 나와 가을에 받을 도지를 계산하고 있더이다. 그런 것들을 사람이라 할 수 있겠소? 개새끼지! 관아에서는 이런 놈들을 잡아다 곤장을 치지 않고 뭐하고 있는지 모르겠소!”

“썩은 밥이 쉰밥이고 쉰밥이 썩은 밥인데, 누구를 믿겠소. 지주나 양반이나 관아나 모두 한통속인데 누가 누구를 잡아다 곤장을 친단 말이오? 차라리 내일 죽을 안늙은이가 애 낳는 것이 빠를 것이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충청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