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숙 청주시립도서관 사서]“캉탕은 대서양에 닿아 있는 작은 항구도시다. 웬만한 지도에는 나오지도 않는다. 이곳 사람들은 그들이 사는 곳이 세상의 끝이라고 말한다.”

소설 ‘캉탕’에 나오는 첫 문장에 오지 여행담인가 했다. 코로나로 일상이 멈춰 있는 요즘, 맘껏 여행도 다닐 수 없으니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이곳이 ‘캉탕’이 아닌가도 했다. 그렇게 읽기 시작한 소설은 전혀 예기치 않은 수행의 기록으로 흘러간다.

소설의 주인공 한중수는 극심한 두통과 이명증을 호소하다 친구인 정신과 의사 J의 권유로 캉탕으로 떠나게 된다. J는 한중수에게 그곳에서 모든 것을 다 잊어버리고 오직 걷고 보고 쓰라고 하며, 그리고 쓴 것들을 자신에게 보내라고 한다. 그렇게 J에게 보내기 위해 쓴 한중수의 일기는 이 소설의 큰 서사를 이루는 중요한 구성이 된다.

‘캉탕’에는 J의 외삼촌인 최기남이 살고 있다. 모비딕을 동경했던 최기남은 젊은 시절 배를 타고 우연히 캉탕에 갔다가 그곳에서 여인을 만나 정착해 ‘핍’이라는 이름으로 살아간다. 살던 곳에서 떠나 세상의 끝에 정착한 ‘핍’이 된 최기남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인간이 되어 살아간다.

캉탕에 있는 세 번째 남자는 선교사 타나엘이다. 그는 캉탕에 선교를 위해 잠시 머물렀으나 선교에 실패하고 교단에서 해임을 당했다. 그리고 타나엘은 선교의 실패를 해명하기 위해 회고록을 쓰다 한중수와 만나 얘기를 나누게 된다.

세 사람은 모두 외지인으로 각자의 사연을 가진 채 캉탕에 와서 다른 삶을 살게 되고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이들은 서로 대화를 통해 자기 안에 억압해두었던 과거와 대면하게 되면서 그들 스스로가 살던 곳에서 떠나려 했고, 달아나려고 했던 비밀이 조금씩 드러난다.

우리는 때때로 지금 있는 곳에서 멀리 떠나 전혀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나로 살기를 꿈꾼다. 현실을 마주하기 힘이 들 때, 도망치고 싶을 때, 떠나기만 하면 뭐든 다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착각을 한다. 비록 그것이 착각일지라도, 현재 이곳에서는 들여다보기 힘든 나 자신을 바로 마주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한번쯤 ‘캉탕’을 찾아볼 용기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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