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봉화수 역시 농민도회소에 돈을 대준다는 것이 역모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아직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하지는 않았지만 그들이 벌이려는 것은 분명 임금을 불신하는 항쟁이었다.

“서두르시지 말고 좀 더 관망을 해보심이 어떠실지…….”

봉화수가 최풍원의 표정을 살피며 말끝을 흐렸다.

평생을 험한 장바닥에서 산전수전 겪어온 최풍원이 밑지는 장사를 할 리 없다는 것을 믿으면서도 자꾸 불안한 마음부터 앞섰다.

“아닐세! 나중에 뺏기는 것보다야 지금 내주는 것이 나을 것 같네.”

최풍원은 이미 마음을 굳히고 있었다.

“며칠이라도 더 기다려보시는 것이 어떨런지요?”

봉화수가 다시 최풍원을 말렸다.

“자네는 내가 성급하다고 생각하겠지?”

“…….”

“이미 청풍관아에서도 농민들의 움직임을 알고 있을 걸세. 그런데도 조처를 취하지 않는 것은 뚜렷한 물증이 없어서이기도 하겠지만 그것보다 조 부사가 농민들을 너무 쉬이 보고 있네. 그러면 농민과 붙어있는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관아에 붙을 수도 농민에게 붙을 수도 없으니 참으로 난감한 문제입니다.”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까운 법이네. 잘 조련된 군졸도 아니고 관아에 원성 하나만 가지고 모인 백성들이니 소경 팔매질 마냥 어디로 불똥이 튈지는 아무도 모르지. 맞는 놈만 억울할 뿐이지. 만에 하나 도회를 열다 난리를 일으켜 우리 여각을 들이치면 관아에서 우릴 지켜주겠나? 관아에서 나왔을 때는 이미 우리 것은 다 빼앗긴 후고 군졸들은 주동자만 잡아가겠지. 그럼 없어진 재산은 누가 찾아주겠는가. 이런 난세에는 관아에서 백성을 지켜주는 것이 아니고 백성 스스로 지키며 사는 것이여. 잃어버리기 전에 우리 스스로 방비를 해야 하는 뜻을 알겠는가? 내가 왜 선수를 쳐 뒷돈을 대려는지 알겠는가?”

“그래도 관아에 반기를 든다는 것은 임금을 불신하는 것인데 그런 농민들한테 자발적으로 돈을 댄다는 것은 스스로 역적이 되기를 자청하는 것 아닙니까?”

“그러니까 뒷돈은 잘 써야지! 무슨 소린지 알겠는가?”

“무슨 말씀이신지 잘 알겠습니다.”

봉화수가 그제야 최풍원의 심중을 읽었다.

“오늘 중으로 다녀 오겄습니다.”

“빠를수록 좋으니, 서두르게!”

“알겠습니다!”

아침 햇살이 채 퍼지자마자 봉화수는 농민도회소가 있는 능강 마을로 우장규를 찾아갔다. 도회소는 처음으로 회합을 가졌던 우장규의 집 근처 비어있는 농가를 임시 거처로 쓰고 있었다. 도회소에는 서른 명 남짓 건장한 농민군들이 집 안팎에서 순라를 돌고, 대문 앞에는 서너 명의 입초가 드나드는 사람들을 일일이 검사했다. 삼엄한 경계에 비하면 순라나 입초들의 행색은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차림새는 꺼주했지만, 그래도 표정들은 한결같이 결의에 차 있었고 힘이 넘쳐 보였다. 봉화수가 입초를 서던 농민군을 따라 집안으로 들어갔다.

“장군님!”

아마 그들은 우장규를 장군으로 부르고 있는 듯했다.

“무신 일이오?”

짜랑짜랑한 목소리가 안에서 흘러 나왔다.

“북진여각에서 왔다고 합니다!”

입초가 안을 향해 소리쳤다.

“북진여각에서 무슨 일로 왔다고 하오?”

“그건 직접 뵙고 말씀 드린답니다.”

“일 없으니 그냥 돌아가라고 하시오!”

“우 장군님, 긴하게 드릴 말씀이 있으니 한 번만 만나 주십시오!”

봉화수가 직접 간청을 했다.

“우리는 관아와 결탁해서 백성들 고혈을 짠 장사꾼들을 좋아하지 않소! 만약 북진여각에서 우리와 뜻을 같이 하고 동참을 한다면 우리도 동지로 받아들이고 환영하겠소! 하지만 거사 자금 몇 푼으로 우리를 회유하려 한다면 큰 실수를 하는 거요. 그러니 얕은 수로 우리를 어떻게 해볼 생각이라면 당장 돌아가시오!”

우 장군이 아닌 다른 목소리가 안에서 들려왔고 목소리는 단호했다. 목소리로 보건대 그들은 이미 최풍원의 의중을 환하게 간파하고 있었다. 봉화수는 어쩔 수없이 도회소를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래, 뭐라고 하던가?”

“만나지도 못하고 마당에서 쫓겨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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