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종살이를 하던 양태술이 김 씨 집안에서 독립하여 외거노비가 된 것도 얼마 전 일이었다. 타관받이였던 양태술은 고향은 물론 아비어미가 누군지도 몰랐다. 어린나이에 김 씨 집안 종으로 들어가 평생을 궂은 일만 하며 살다 온 몸의 뼈마디가 녹아내려 이제 더 이상 김 씨네 큰살림을 감당하지 못하게 되자 방출을 당한 것이었다.

“밥만 축내는 종은 가축만도 못하다며 구박하고 천대를 당할 때는 차라리 소나 돼지가 된 심정이었소! 그런 심정을 양반인 당신들이 알기나 하소? 봉기를 하면 내가 앞장을 서겠소!”

양태술이 유겸호를 비롯한 사족들을 공격했다.

“무지한 사람들! 도통 세상 무서운 지를 모르니…….”

유겸호가 탄식을 했다.

“그럼, 세상 무서워 되지도 않는 청원만 계속 한단 말이오. 지금까지 내리 삼 년을 등소를 했지만 우리한테 돌아온 것이 뭐요? 우리 고을 일을 함부로 바깥으로 알렸다고 매타작만 돌아왔소. 게다가 고리로 주던 환곡조차 주지 않아 가솔들을 굶겨 죽인 일만 생겼소. 있는 놈이나 생일날 잘 먹으려고 보름을 굶는다고 배부른 소리를 하지 없는 놈은 생일상 받으려다 당장 굶어 뒈지게 생겼수다.”

이창순이 자신들을 비하하는 유겸호의 말을 되받아 열을 내며 몰아세웠다.

“나도 철시를 하고 관아로 쳐들어가는 것은 반대요. 그건 난리요. 내가 팔도를 돌며 장사를 하며 지금까지 곳곳에서 일어난 난리를 봐왔지만 모두 관군에게 당하고 말았소. 그게 뭣 때문이겠소? 분노만 앞세워 계획도 없이 무작정 일을 도모했기 때문이오. 그러니 저 양반님네 의견도 생각해 봅시다. 얼마 전에 일어난 영월 난리도 마찬가지고, 당장 우리 고을에서 일어난 공이동은 어떻게 됐소?”

북진여각의 도중객주인 제천 객주 차대규였다. 그는 보부상을 하며 모은 돈으로 제천에 객주집을 차려 강원도 태백산 일대의 특산물들을 받아서 거래했지만 근자에는 통 장사가 되지 않았다. 차 객주는 그 이유가 흉년에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나라에서 상인들에게 주었던 특권을 없애고 누구나 장사를 할 수 있게 만든 금난전권에 더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예전처럼 관아에서 험표라도 발행해서 뜨내기 장사꾼들을 통제해 주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광아리에서 회합이 있다는 전갈을 듣고 혹여라도 장사에 도움이 될 수 있는 길이 있을까 해서 같은 도중회인 매포객주 박노수를 설득해 참석한 것이었다.

“그렇소이다. 이 싸움의 결과는 분명하외다. 그러니 좀 더 심사숙고해서 여러 사람들의 의견을 들어 좋은 방향으로 결정을 하는 것이 좋겠소이다.”

차대규와 함께 와있던 매포객주 박노수가 끼어들었다.

“뭐라도 있는 사람들은 저런 소리를 하지유. 우리처럼 구린 엽전 한 닢은 고사하고 당장 땟거리도 없어 굶는 판에 관아와 양반·지주들 장리빚 독촉은 바늘처럼 찔러대고 한시라도 맘 편할 틈이 없는 데 뭔 의견을 듣고 계획이유.”

집 주인인 나무꾼 천만이가 사족인 유겸호와 객주인 차대규·박노수를 질타했다.

“그렇소! 이미 도회를 알리는 통문을 각 마을에 다 띄웠소!”

우장규가 통문을 돌렸다며 유겸호를 비롯한 등소론자들을 압박했다.

“그렇게 독단적으로 하려면 뭣 땜에 회합을 가진단 말이오!”

유겸호가 불 같이 화를 냈다.

“당신들 사족들은 뭘 좀 하려고 하면 절차와 형식만 내세우는 데, 그 무슨 개 신주 물어가는 소리요. 치장 차리다가 신주 개 물려 보내겠소!”

우장규도 물러서지 않고 유겸호와 맞섰다.

“자, 모두 진정들 하시고 내 말 좀 들어보시오. 그 두 가지 방법을 다 써보면 어떻겠소?”

유겸호와 같은 사족 출신인 하익수가 두 사람의 팽팽한 의견 사이에서 절충안을 내놓았다.

“어떻게 말이오?”

“도회를 열어 봉기도 하면서 관아에 등소도 하자는 얘기요.”

하익수는 처음부터 철시를 하고 봉기를 하자는 농민들의 의견과 합법적인 등소를 고집하는 사족들의 의견에도 반대를 했다. 그것은 사족으로 향원을 지냈던 어윤오·고한명·변택주도 마찬가지였다. 이들은 평소 유겸호와의 친분 관계를 끊지 못해 인정적으로 그의 의견에 동조하고 있었다. 그런데 대부분의 회합 참가자들이 강경론으로 나서자 이들은 슬그머니 절충안을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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