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번역가

[충청매일] 465년 남북조시대, 이 시기는 대륙을 관통하는 황하를 기준으로 남쪽은 송나라가 지배하고 북쪽은 북위가 지배하여 서로 패권을 차지하기 위해 전쟁을 일삼는 극심한 혼란의 시기였다. 특히 송나라는 귀족과 관료들의 부정부패가 심했고 간신들이 득세해 나라꼴이 말이 아니었다. 그런 가운데 태자 유소가 부친인 문제를 암살하고 권력을 찬탈하려 한 사건이 벌어졌다. 이때 문제의 3남인 유준이 군부의 지원을 얻어 형인 유소를 죽이고 운 좋게 4대 황제 효무제에 등극했다.

사실 효무제는 판단이 어리석고 행동이 우둔한 자였다. 간신들의 아첨에 넘어가 왕권을 강화한다는 명목으로 군부의 권한을 축소하였다. 그 권한은 고스란히 간신들에게 넘어갔다. 이후 간신들은 효무제에게 무차별 사치를 일삼도록 하고 도박에 빠지도록 했다. 그리고 북위를 멸망시켜 중원을 통일하기 위한 국가재정 확보를 위해 조세를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효무제는 신하들에게 의견도 묻지 않고 즉각 재가했다. 그러자 수많은 백성들이 무차별 수탈을 당해 도탄에 빠졌다.

늘어난 조세는 군비확장에 쓰이지 않고 효무제의 도박과 상금으로 쓰였다. 효무제는 간신들과 도박판을 벌여 그들이 잃어주는 돈을 따면서 매일 희희낙락하였다. 저녁이면 그날 자신에게 아부를 가장 잘한 신하에게 막대한 상금을 하사하였다. 그러자 간신들은 효무제를 이용해 더 많은 부를 축적하고자 이번에는 나라의 벼슬을 모두 가격을 매겨 매관매직에 나섰다. 어느덧 송나라 조정은 돈 버는 시장판이 되고 말았다. 부를 얻기 위해서는 황제에게 아첨하는 일이 우선이었다. 그래서 신하들은 모두 여자처럼 화장을 곱게 해서 얼굴을 새하얗게 꾸미고 다녔다. 황제에게 칭송하고 아부하는 말과 글을 배우는데 여념이 없었다. 어느 날 효무제는 자신이 가장 총애하는 간신으로부터 보고를 받았다.

“지금 북위가 몽골과 장기전에 돌입했으니 이틈에 북위를 공격하면 손쉽게 중원을 통일할 수 있습니다.”

효무제가 즉각 군대 출병을 명하자 반대하는 신하가 한 사람도 없었다. 그러자 장군 심경지가 나서서 간곡히 아뢰었다.

“황제폐하! 밭일은 사내에게 물어야 하고 길쌈질은 여자에게 물어야 잘 알게 됩니다. 그런데 북위를 공격하는 일을 희고 고운 얼굴에 글 읽는 것밖에는 모르는 백면서생들과 도모하신다면 어찌 승리를 기약할 수 있겠나이까?”

하지만 효무제는 이 말을 무시하고 북위를 공격하였다. 결과는 대참패였다. 효무제는 패배의 소식을 듣자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때 간신들이 음모를 꾸며 심경지가 반란을 획책한다고 아뢰었다. 그러자 효무제가 크게 노하여 심경지를 죽이고 그 일가를 몰살시켰다. 얼마 후 효무제가 죽고 금위군 대장 소도성이 정변을 일으키자 송나라는 단숨에 망하고 말았다. 이는 ‘송서(宋書)’에 있는 이야기이다.

백면서생(白面書生)이란 책만 읽어 얼굴이 하얀 선비란 뜻이다. 현실의 어려움을 전혀 모르고 탁상공론만 일삼는 지식인을 가리키는 말이다. 실제로 보고 듣고 겪은 일을 경험이라 한다. 이는 피부를 통해 얻은 지각이며 뼈아픔을 통해 몸에 축적된 지식이다. 몸과 마음이 평온하고자 한다면 실제 경험자의 말을 귀담아 들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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