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은혜 청주시립도서관 사서]‘수능 예언 문제집’이 나왔다. 2021년부터 2035년까지 15년 동안의 수능예언 문제랑 정답이 과목별로 쫙 나와 있다.

무슨 말을 하고 있나 황당해 할 분들에게 함기석 시인의 청소년 시집 ‘수능 예언 문제집’을 소개한다. 시집은 수능세대인 나에게 제목부터 제법 강한 호기심으로 다가왔다. 어떤 이야기가 있을까.

시인은 먼저 수능을 준비하는 학생들의 일상을 시 ‘공각 기동대’에서 ‘수능 만점의 특수 임무를 지령받은 나는/ 매일매일 학습-테스트 학습-테스트 학습-테스트/ 끊임없이 입력-출력-검사를 반복해야 하는 게/ 나의 유일한 임무고 존재 이유다’라고 표현 한다. 그 테스트의 하나로 ‘모의고사’를 빼놓을 수 없다. 시인은 첫 시로’모의고사 보는 날’을 올린다.

‘오전 8시, 마시면 배탈 설사 나는 흰 우유 같고/ 오전 9시, 시험지는 이상하고 커다란 글자의 늪 같고/ 오전 10시, 문장들은 끊어지지 않는 길고 매운 쫄면 같고/ 오전 11시, 아는 문제 하나 없어 텅 빈 운동장만 쳐다보고/ 아아 12시, 햇살은 선인장 가시처럼 살을 콕콕 찌르고……(중략) 오후 4시, 끝났지만 영원히 끝나지 않을 전쟁 같다.’

시 전문을 소개하지 못한 아쉬움이 있지만 모의고사 보는 날의 긴장과 불안한 심리를 매시간 시간 그만의 위트로 표현한다. 결코 즐거운 이야기는 아닌데 시를 읽는 내내 웃음이 난다. 그 날의 교실 안에 내가 있는 듯하다. 테스트 후 결코 자유롭지 못한 이유는 그 결과로 나의 등급이 매겨진다는 것이다. 시 ‘턱걸이’ 와 ‘우울해서’에서 시인은 각각 표현한다.

‘저녁 해가 지평선에 목을 걸고/ 밑으로 떨어지지 않으려고 바들바들 떤다/ 다리를 오징어처럼 배배 꼬고 낑낑거리는 8등급 나처럼’(턱걸이 전문)

‘전국 모의고사 본날/ 우울해서 반 친구들이랑 고기왕 김덕팔에 왔다/ 1등급 등심은 못 먹고/ 내 뱃살 닮은 삼겹살만 배 터지게 먹었다 (중략)

갑자기 내가 정육점 식당 갈고리에 걸린 9등급 고깃덩어리 같았다‘ (우울해서 부분)

한 등급 올라가는 일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닌 것을 알기에 마음이 짠하다.

시 ‘나의 생일’에서 ‘나는 고등학생 되는 것이 무섭고 두려웠다’라는 구절은 정말 공감한다. 고등학생이 되는 순간부터 일상에 여유란 없다. 이른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교실에서 책과 씨름하고 주말은 학원과 과외로 기계처럼 반복되는 삶이다. ‘엘리베이터, ‘사자 우리’, ‘불면증’ 등 다수의 시에서는 지치고 힘겨운 학생들의 모습이 각각의 소재로 그려져 있다. 

또한 시인의 마음 속 깊은 곳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학생들이 있다. ‘세월호’의 학생들이다. 시 ‘떠오르지 않는 배’, ‘교실엔 나 혼자’, ‘선생님의 슬픈 소원’, ‘천국’들은 제목만으로도 아픔이고 슬픔이다. 급기야 시 ‘부활절’에서는 ‘아, 저기 저 시냇가/ 국수 가락처럼 쏟아지는 햇발 사이로/ 아이들이 어깨동무하고/ 찰방찰방 맨발로 돌아오고 있다/ 공중 가득 둥근 나이테를 낳으며 퍼져 가는 물/ 물들의 저 환한 웃음소리 (부활절 부분) 로 그들을 불러낸다.

3년의 수고는 ‘대학수학능력시험’으로 결정된다. 그의 시처럼 ‘결전의 날’이다. 마지막 교시가 끝나고 시험장을 빠져나오는 학생들을 시인은 ‘털이 다 뽑힌 말라깽이 양이 비실비실 웃고 있었다’라고 했다. 온 몸의 기운이 다 빠져 멍하니 걸어 나오던 그 날의 허탈한 내 모습을 말하는 듯하다. 교실 앞에 생긴 ‘책 무덤’은 그 허탈감을 더한다.

‘수능 예언 문제집’은 한창 자유로워야 할 시기, 몸과 마음이 자라야 할 시기에 ‘수능’이라는 굴레에 갇혀 사는 우리의 청소년들을 향한 시인의 관심과 사랑이다. 시인은 각 시를 통해 답답하고 안타까운 현실을 그들 대신 털어놓는다. 그리고 눈앞의 성공이 미래를 보장하는 것도 아니고, 눈앞의 암울한 성적표가 미래의 희망을 좌절시키는 것이 아니니 너무 절망하지 말라고 다독인다.

코로나19 바이러스로 불안하고 혼란스런 시간들 속에서 수능을 치룬 2020년 수능생과 곁에서 마음 졸인 부모님들에게 위로가 됐으면 하는 마음으로 ‘수능 예언 문제집’을 권해본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충청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