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충주목사가 알기 전에 단숨에 달려가 그놈들의 입을 막게!”

조 부사가 병방을 파견한 것은 산호를 했던 농민들의 사정을 듣거나 마을사람들의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자칫 공이동에서 있었던 농민들의 산호가 충주관아의 목사에게 알려지기라도 하는 날이면 자신의 일신상에 미칠 파장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청풍관아의 병방은 공이동에 도착하자마자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모든 마을사람들을 모아놓고 겁박부터 했다. 산호에 참여했던 농민들을 붙잡아 사람들 앞에서 오라를 지우고 볼기를 치며 공포 분위기를 조성했다. 마을사람들을 겁주기 위한 본보기였다.

“관아도 한 통속이여!”

“우리 같은 것들은 그저 죽으라는 얘기여!”

이제는 자신들의 억울한 심정을 풀 수 있겠다는 공이동 농민들은 청풍관아에서 달려온 병방과 군졸들의 행태를 보고 모두들 낙심했다.

“너희같이 땅을 파먹고 사는 농투성이 주제에 어찌 나랏님 은혜도 모르고 감히 산호를 벌였단 말이냐. 산호가 얼마나 무거운 죄인 줄 아느냐? 산호를 벌인 죄인은 사돈에 팔촌까지 모조리 잡아다 목을 베도 그 죄는 씻어지지 않는다. 억울한 일이 있으면 관아에 고변을 할 일이지 어찌하여 나라에서 금하는 산호로 다른 선량한 백성들을 선동하고 불안하게 만들었단 말이냐? 내 직접 왔으니 할 말이 있으면 모두 해보거라!”

병방이 마을사람들에게 엄포를 놓는 한편으로 억울한 심사를 고하도록 했다. 모여 있는 마을사람들 여기저기에서 불만들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공이동에서 벌어지는 작폐를 관아에 알리려고 해도 장 씨 머슴들이 바깥으로 나가는 마을 입구를 막고 일일이 따져 물으며 출입을 금지하는 데 무슨 수로 관아에 알리며, 설령 관아에 도착했다고 하더라도 우리 같은 두더지는 정문에서 군졸들에게 막혀 아전 뒤꿈치도 볼 수 없으니 어떻게 하란 말입니까?”

“그렇소이다. 소작이나 세금을 걷어갈 때는 시도 때도 없이 들이닥쳐 집안을 홀랑 뒤집어 놓는 사람들이 정작 억울한 일이 있어 하소연이라도 하려 하면 출타 중이다 바쁘니 다음에 오라하며 온갖 핑계를 대며 어떻게 고변을 할 수 있단 말이오?”

“아무리 상놈으로 태어난 것이 죄라 해도 이젠 더 이상 견딜 수 없어 속풀이라도 하려고 산에 올라가 소리친 것이 뭐 그리 죽을죄란 말이오?”

“네 이놈! 아무리 물정 모르는 무지한 두더쥐 놈이라 해도 산호가 어떤 죄인지도 모른단 말이냐? 이놈아, 그건 모반죄야 모반죄! 얘들아, 저 놈들도 오라를 지워 꿇리거라!”

억울한 일이 있으면 이야기하라는 병방의 말은 불만을 가진 농민들을 색출하기 위한 술수에 불과했다. 산호를 했던 마을사람들을 옹호하던 농민들이 병방의 명령이 떨어지자 모두 묶여 끌려나왔다. 군졸들이 휘두르는 육모방망이로 매질을 당하는 이웃들을 보며 더 이상 맺힌 속마음을 토로하기 위해 입을 여는 마을사람은 없었다. 횃불을 들고 산호를 했던 농민들뿐 아니라 조금이라도 불량기가 보여 위험하다고 생각되는 장년들까지 조 부사와 군졸들에 끌려 청풍관아로 붙잡혀 갔다.

“주린 배에 매질까지 당하고 어찌 살아야 할꼬.”

“농군은 죽어도 찍소리도 말라는 거여 뭐여?”

굴비처럼 줄줄이 엮여 끌려가는 사람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저마다 푸념을 했다.

“이 나라에 농군이 사람이여?”

“양반들 눈에는 일이나 꿍꿍하는 소로나 보일 테지. 그러다 일 못하면 잡아먹고.”

“상놈은 소만도 못하지. 상놈 팔아 소나 한 마리 사겠냐?”

“이런 놈의 세상 확 뒤집어졌으면 좋겠구먼.”

“아까 부사 앞에서 그런 소리를 해보지 그랬냐?”

“괜히 지 모가지 맬 일 있냐?”

“그러니까 하는 말이여. 그래봐야 바뀌는 것도 없고, 우리네만 더 죽어나. 이래저래 살다 죽으면 그 뿐이여.”

사는 것이 너무 힘겨워 푸념들을 해보지만, 그래봐야 자신들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체념하는 것이 농민들이 할 수 있는 전부였다.

“그래, 무엇 때문에 산호를 했다더냐?”

관아로 돌아온 병방에게 조관재 청풍부사가 물었다.

“공이동 장 부자가 마을민들에게 작패를 부려 일어난 작은 소동에 불과합니다.”

병방은 산호가 일어난 모든 이유를 장 부자에게 돌려 사건의 진상을 은폐했다. 그러나 조 부사라고 농민들이 일으킨 소요의 또 다른 이유를 모를 리가 없었다. 이미 조선 팔도 곳곳에서 농민들의 항쟁이 끊이지 않고 일어나고 있었다. 그 이유는 모두 한 가지였다. 피고름이 날 정도로 닦달하는 관아와 양반·지주들의 착취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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