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공이동 산호, 민란에 불씨를 지피다

[충청매일]

① 공이동 산호, 민란에 불씨를 지피다

“배고파서 못 살겠다!”

“환곡 장부를 불태우자!”

“양반·지주들을 쫓아내고 우리 땅을 되찾자!”

“청풍관아로 쳐들어가 관속들을 몰아내자!”

지난밤 도무지 이대로는 살 수 없다고 생각한 공이동 농민들이 떼를 지어 장자봉에 올라가 징을 치고 횃불을 올리며 산호를 했다.

공이동은 청풍관아의 세곡을 쌓아놓는 동창이 있는 마을로 물길을 따라 하류로 십여 마장 떨어진 곳에 있었다. 이곳은 주변 산세가 험해 군졸들이 들어가면 천연요새요, 관아와의 거리가 멀어 토호가 들어가면 노략질하기에 그만이었다. 밖에서 보면 첩첩산중으로 둘러싸여 마을이 있을 것 같지 않았지만, 산 사이로 난 좁은 골짜기를 지나 병목만 빠져 나가면 갑자기 눈앞이 환하게 터지며 멍석을 펼쳐놓은 듯 널따란 농토와 마을이 펼쳐졌다. 그곳에는 대대로 토호 장 씨들이 터를 잡고 득세하고 있었다.

공이동이라고 청풍관아 관내의 다른 마을들과 조금도 다를 것이 없었다. 백성들은 평생 꿍꿍거리며 개미처럼 바지런을 떨어도 끼니 걱정이 가실 날 없었고 양반 토호들은 정자에 누워 부채질만 하고 있어도 곳간에 쌓인 곡물과 재물은 줄어들 줄 몰랐다. 그래도 순하기만 한 백성들은 양반·지주들의 갖은 횡포와 악행을 숙명처럼 받아들였다. 상놈으로 태어난 자신들이 주변의 핍박을 받고 고생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다. 다른 욕심은 꿈도 꾸지 않았다. 그런 백성들이 관아 수령이나 양반·지주들에게 반발을 해 대거리를 한다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이었다. 그런데도 지난밤 공이동 농민들이 목숨을 걸고 산호를 벌였다.

예전 같으면 무지랭이 농민들이 떼로 일어나 불만을 토로한다는 것은 생각지도 못했다. 관아나 양반으로부터 수탈을 견디어내다 도무지 견딜 수 없어 죽을 지경이 되면 몰래 야반도주를 하거나 산중 깊은 곳으로 숨어들어가 화전을 일구며 두더지처럼 살다 죽는 것이 농민들이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좀 더 괄괄한 농민들은 도적이 되어 행인들이나 장사꾼들의 봇짐을 빼앗는 소극적인 행동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더 이상 농민들도 참거나 피하여 떠나는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하지는 않았다. 세상살이가 희망도 없이 나날이 힘겨워지기만 하자 관아나 양반·지주들의 수탈에 반기를 드는 농민들의 투쟁 방법도 다양한 형태로 나타났다. 농민들도 이제는 관아나 양반들을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고 적극적인 방법으로 자신들의 억울함을 알렸다.

이런 방법들 중 하나가 지난 밤 공이동 농민들이 벌인 산호였다. 산호는 자신들의 억울한 심정을 주변에 토로하는 ‘와언’이나 관리나 양반들이 무서워하는 ‘투서’나 ‘괘서’보다도 더 과감한 투쟁 방법이었다. 와언·투서·괘서가 자신의 심정을 토로하는 개인적인 방법이라면, 산호는 관리들의 정사나 지주들의 탐학에 원한을 품고 산에 올라가 욕을 하며 고함을 쳐 사람들을 선동하는 적극적이고 과감하게 대중의 참여를 유도하는 투쟁 방법이었다. 민란을 주모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산호에 대해 나라에서는 대명률에 의해 목을 베어 죽이거나 중벌을 내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이동 농민들이 산호를 하며 시위를 벌인 것은 그들이 처한 고통과 급박한 현실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자신이 관장하는 청풍 관내에서 농민들의 소동이 일어났는 데도 조관재 부사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공이동에서 산호가 일어났다는 기별을 받고 조 부사가 한 일은 육방관속의 병방을 불러 주동자와 동조자를 잡아오라고 한 일뿐이었다. 관내에서 고을민의 소요가 일어났다는 것은 큰 문제였다. 당연히 지방 수령인 부사가 직접 달려가 전후 사정을 조사하고 고을민들의 문제를 들어봐야 할 중요한 사안이었다.

“병방! 군졸 서넛을 데리고 가게! 땅이나 파먹고 사는 농군 주제에 제깟 것들이 뭘 어떻하겠다고 산호질이여. 몽땅 잡아들여 곤장이나 쳐서 으름장이나 놓게. 그럼 아무도 딴 생각을 못할 걸세.”

조관재 부사는 목을 내놓고 산호를 감행한 농민들의 처절한 생활고는 생각지도 하지 않았다. 다만 자신의 관내에서 무지랭이 농민들이 떼를 모아 소동을 일으켰다는 사실이 기분 나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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