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말글 나들이]말과 글 사이 1
[우리 말글 나들이]말과 글 사이 1
  • 충청매일
  • 승인 2021.01.17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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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명 시인]학교에는 ‘특수학급'이 있습니다. 학교에서 정상 수업을 따라가기 힘든 아이들이 가끔 있어서 그 아이들을 따로 모아서 모자라는 부분을 더 가르쳐주고 깨우쳐주는 것입니다. 말이나 글은 그것을 깨우치는 나이가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까닭으로 그런 때를 놓치면 깨치기가 더디고 따라가기가 힘듭니다. 가정 형편 때문에 그런 경우도 있지만, 지능이 보통 아이들보다 낮아서 그런 경우도 있습니다. 어떤 경우에나 보통 학생들과 함께 어울리기 힘든 부분이 바로 ‘공부' 부분입니다.

이런 아이들 중에 언어 능력이 조금 딸리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이 아이들이 겪는 어려움은 두 가지인데, 제 생각을 말로 선뜻선뜻 표현하는 것이고, 그것을 글로 쓰거나 글로 된 것을 읽는 것입니다. 말하는 것은 타고난 것이니 벙어리가 아니라면 누구나 더듬더듬이라도 할 수 있는 것인데, 문제는 글자를 읽고 소리내어 그대로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워낙 어린 나이에 그런 기억도 잘 나지 않을 만큼 일찍 글을 깨우치기 때문에 이런 곳에서 아이들이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합니다.

하지만 현장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다보면 글이라는 것이 이토록 어려운 것인가 하는 탄식이 절로 납니다. 벌써 말을 배우고 글을 다 배워서 날마다 쓰는 데 익숙한 사람들은 이 어려움을 잘 모릅니다. 하지만 특수학급에서 열심히 정규과정을 '뒤'따라오는 아이들과 생활하다 보면 이 말과 글이 얼마나 무섭고 어려운 존재인가를 깨닫습니다.

예컨대 ‘옛날 옛날 시골에 한 소년이 살고 있었다’라는 문장을 읽으라고 하면 글자 하나하나를 또박또박 읽습니다. 우리는 이 문장을 이렇게 읽습니다. ‘옌날 옌날 시고레 한 소녀니 살고 이써따’라고 말이죠. 하지만 특수학급 학생들은 이렇게 읽지 않습니다. ‘옛날 옛날 시골에 한 소년이 살고 있었다’라고 읽죠.

이게 무슨 소리냐고요? 한 낱말을 이루는 음절이 서로 뭉개져서 소리난다는 사실을 그 아이들은 잘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한 글자 한 글자를 또박또박 읽습니다. 그런 아이들에게 가장 힘든 말이 ‘있었다’ 같은 것입니다. 그들은 이것을 ‘이써따’라고 읽지 못합니다. ‘있, 었, 다’라고 읽습니다.

처음엔 이것을 아이들이 글을 깨우치지 못해서 그런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즉 아이들 탓을 한 것이죠.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과연 이것이 ‘특수학급'에 있는 아이들의 잘못인가? 하는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게 과연 그 아이들의 잘못일까요? 만약에 우리가 읽듯이 소리나는 대로 적어주었다면 그 아이들은 그 소리를 듣고 대번에 문장을 이해했을 것이고, 읽기도 쉬웠을 것입니다. ‘옌날 옌날 시고레 한 소녀니 살고 이써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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