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허허, 그것 참 신랑도 없는 처녀한테 애 낳으란 소리랑 뭐가 다른가?”

“저는 어르신만 믿습니다!”

“아무리 쇠를 만지는 기술이 있다한들 제대로 연장을 만들려면 다 그만큼의 재료가 들어가야 하는 법이여. 돈이 그저 쇳조각이라면 몰라도 그만한 가치를 지니려면 비싼 재료가 그 안에 들어가 있는 거여. 그런데 그런 재료도 없이 돈을 만들면 그건 쭉정이와 뭐가 다르단 말인가. 농사꾼이 아무리 기술이 좋으면 뭘 하는가. 수확한 곡물이 맨 쭉정이 밖에 없다면…….”

천 노인이 막막해했다.

“호조에서 내려온 감독관이 일일이 동전을 녹여 확인을 하겠습니까? 그러니 무게와 때깔만 감쪽같이 내주세요!”

“그것 참! 지금 자네 말이 씨앗도 없이 나락을 거둬들이라는 말이나 뭐가 다르단 말인가?”

“전, 어르신만 믿고 있겠습니다요!”

최풍원이 막무가내로 매달렸다.

“허허! 그것 참!”

대장장이 천 노인이 기가 막힌 지 헛웃음만 쳤다.

수일이 흐른 뒤 천 노인이 직접 만든 동전을 가지고 와 최풍원에게 내보였다.

“자, 이만하면 되겠는가?”

“완벽합니다! 어르신 정말 대단하십니다! 이 정도라면 엽전을 만든 어르신 외에는 아무도 이 돈이 가짜라는 걸 눈치 채지 못하겠습니다!”

“마음에 드는가?”

“어떻게 하셨는지요?”

“모자라는 구리와 주석 대신 아연과 철을 섞어 만들었네.”

“각기 다른 쇠를 가지고 그게 가능하십니까?”

“불과 담금질 궁합을 잘 맞추면 가능하지.”

대장장이 천승세 노인이 만든 상평통보는 충청감영에서 만들었다는 충자 표식만 엽전 뒤에 없었다면 한양의 상평청에서 만든 상평통보와 구분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완벽했다. 모자라는 재료를 가지고 이렇게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은 평생 쇠를 다뤄온 천 노인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실제로 나라에서 허락을 받고 관아에서 주전소를 차려 만들어내는 상평통보도 크기와 모양, 색깔과 무게가 제각각 달랐다. 그래서 최풍원도 처음에는 구리와 주석을 적게 넣고 엽전을 작게 만들까 하는 궁리도 했다. 무게만 좀 줄인다면 줄인 만큼 엽전의 수효를 늘일 수 있었다. 그만큼 액수도 늘어나는 셈이었다.

최풍원은 천 노인과 함께 별당에 차려진 주전소로 갔다. 작업장 안에서는 동몽회원들이 일사분란하게 일을 하고 있었다. 쇳물을 녹이느라 땀을 뻘뻘 흘리며 풀무질을 하는 사람들, 녹은 쇳물을 거푸집에 붓는 사람들, 거푸집을 들고 담금질을 하는 사람들, 나뭇잎처럼 붙어있는 엽전을 떼어내는 사람들, 엽전의 거친 부분을 다듬는 사람들, 완성된 엽전을 정리하는 사람들이 질서정연하게 저마다의 일에 열중하고 있었다.

“어르신, 이렇게 하면 하루 해동갑까지 얼마나 만들 수 있는지요?”

“하루 삼천 냥이야 만들겠지.”

“그럼 아무리 빨리해도 석 달이 더 걸린다는 건데…….”

“왜, 급한가?”

“어르신, 힘드시더라도 달포 안에 끝내 주시오!”

최풍원은 지금 한시가 급했다.

“이건 완전 벼락불에 콩 구어 먹는 셈일세 그려.”

대장장이 천 노인이 기가 막혀 했다.

“일단 이십만 냥만 먼저 만들어 주시오!”

“알았네. 한 번 해봄세!”

천 노인이 손바닥에 묻은 흙먼지를 탁탁 털며 말했다.

북진여각에서 관전과 조 부사에게 줄 십오만 냥과 탄호대감에게 갚을 사전 오만 냥을 모두 합쳐 이십만 냥의 상평통보 주조를 끝낸 것은 달포가 채 지나지 않아서였다. 그동안 천 노인과 동몽회원들이 철야를 하면서 작업을 한 덕분이었다. 거기에다 천 노인이 만든 충자전은 한양의 상평통보와 비교해도 흠잡을 것이 없을 정도로 완벽했다.

“이게 정말 청전을 녹여 만든 상평통보란 말이지?”

조관재 부사는 좋아서 어쩔 줄 몰라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쓸모도 없는 청전으로 오만 냥이나 되는 상평통보를 만들어주고 거기에 덤까지 조운선 열 척까지 생겼으니 조 부사로서는 자다가 금덩어리가 생긴 셈이었다.

“사주전을 만든 비밀은 최 행수와 나만 알고 무덤까지 가야 하네. 만약 이 비밀이 새나가면 우리 둘은 다 죽네! 알겠는가?”

조관재 부사가 최풍원에게 비밀을 지킬 것을 몇 번이나 다짐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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