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연승 대하소설 북진나루]제12부 북진여각 부정을 저지르다(977)
[정연승 대하소설 북진나루]제12부 북진여각 부정을 저지르다(977)
  • 충청매일
  • 승인 2021.01.13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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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매일] “돈은 나라의 핏줄과 같은 것이오. 그런 중한 나랏일을 어찌 사사로이 일개인에게 맡길 수 있단 말이오. 충자전 주조는 철저한 감독 하에 관아에서 직접 주조할 것이오! 북진여각에서 하면 비밀 보장이 되겠소?”

조관재 부사가 최풍원의 부탁을 거절했지만 완전히 문을 닫아 걸은 것은 아니었다. 조 부사는 비밀을 운운하며 여운을 남겼다.

“호조에서 이번에 삼십만 냥이 할당됐는데, 내려 보낸 구리가 턱없이 모자라 청전을 녹여 충자전을 만들까 하오.”

최풍원은 조 부사가 충자전을 주조하는데 청전을 녹여 쓸까 한다는 말을 곰곰 따져보았다.

나라에서 지방관아에 주전을 할당할 때는 호조의 감독관과 함께 한양의 주전기술자들이 파견되었다. 그리고 동전을 만들 양 만큼의 구리를 정확하게 산정하여 내려 보냈다. 그런데도 조 부사가 재료를 운운한 것은 다른 속셈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할당받은 화폐 외에 사주전을 따로 만들려는 꿍꿍이가 분명했다. 그러나 관아 내의 주전소에서는 대궐에서 파견된 감독관이나 보는 감시자의 눈이 많아 사사로이 화폐를 만드는 것은 어려웠다.

청전은 중국 돈으로 사역원 역관들이 청나라를 드나들며 밀수입한 중국 돈이었다. 조정에서는 경복궁을 중건하기 위해 주조했던 고액의 당백전이 물가를 혼란에 빠뜨리자 주조를 금지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반대로 장마당에 돈이 씨가 마르며 전황이 발생했다. 상인들이나 부자들은 돈을 싹쓸이하기 시작했다. 네다섯 냥이면 쌀 한 섬을 살 수 있었던 상평통보가 그 돈으로 두 세 섬을 사고도 몇 푼의 돈이 남을 정도로 돈 가치가 높아졌다. 돈의 가치가 치솟자 팔도 곳곳에서 사주조가 만연했다. 그러다 발각되어 효수되는 사주조범도 속출했다. 그래도 사주조는 늘어났고 그 즉시 동전은 지하로 은닉되었다. 돈이 부족해 장마당에 유통되지 않자 모자라는 부족분을 채우기 위해 조정에서는 밀수입되어 암암리에 유통되고 있던 청전의 사용을 허용했다. 그러나 청전은 상평통보에 비해 절반에도 미치지 않는 재료를 섞어 만든 불량돈이었다. 청전은 상평통보와 액면은 같았지만, 실제 가치는 상평통보에 훨씬 미치지 못하는 ‘쇠천’이었다. 천한 쇠요, 값싼 돈이었다. 상평통보 한 냥이면 청전 서너 냥을 살 수 있었다. 그러자 밀수업자들은 중국으로부터 값싼 청전을 들여와 사용했고 사람들은 실제 보관 가치가 높은 상평통보는 감춰둔 채 청전만 사용했다. 그 결과 청전이 급격하게 늘어나 상평통보 유통량의 절반까지 육박했다. 물가는 혼란하기 그지없었고 이에 위협을 느낀 조정에서는 사전 예고도 없이 청전 유통을 갑자기 금지시켰다. 더 많은 돈을 떼어먹기 위해 세금을 돈으로 걷어 들였던 지방 수령이나 부자들은 청전을 다른 물산으로 바꿀 새도 없이 하루아침에 쇠붙이에 불과한 쇳조각으로 전락되고 말았다. 본래 엽전은 구리가 주된 재료였고 구리의 가치가 곧 그 돈의 실제 가치였다. 그러나 청전은 상평통보에 비해 구리 성분이 반의 반절도 들어있지 않았다. 그런데도 장마당에서는 상평통보와 똑같은 가치로 사용되었으니 청전을 많이 가지고 있던 사람들은 순식간에 큰 손해를 보게 되었다. 설사 청전을 녹여 구리를 추출한다 해도 가치는 사분의 일로 줄어드는 셈이었다. 그러니 사람들은 아까워 기회를 기다리며 쌓아두고 있었다.

조관재 부사도 유통이 금지된 청전을 그대로 갖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그 청전을 사용하기 위해 청풍관아에 주조권이 허락된 좋은 기회를 그냥 버릴 조 부사가 아니었다. 화폐를 주조하게 된 이번 기회에 어떤 식으로든 청전을 사용할 것이었다.

“사또, 청전을 녹여 충자전을 만들면 어떨까요?”

최풍원이 조 부사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의향을 떠보았다.

“아니! 이 사람이 무슨 소리를 하는 겐가? 사주조범은 효수형인걸 모르는가?”

조관재 부사가 펄쩍 뛰었다. 그러나 그 말속에서 진정성이 느껴지지는 않았다.

“사또, 청전을 얼마나 가지고 있으신지요?”

“그까짓 소용도 없는 쇠붙이 얼마가 있으면 뭐 하겠는가. 녹여 연장이나 만들던지.”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조관재 부사의 얼굴에는 아까워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너무 아깝지 않사옵니까?”

“팔만 냥이 넘을 걸세.”

쓸모없는 돈이 되어버리기는 했지만 청전을 그 정도 가지고 있다면 상평통보 또한 그 못지않게 가지고 있을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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