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지호·안용찬 전 대표에게 각각 무죄 선고
재판부 “살균제·폐질환 인과관계 증명 안돼”
피해자 “내 몸에서 일어나는 일이 모두 증거”

[충청매일 최재훈 기자] 충북지역에서 170명의 피해자가 발생하는 등 전국적으로 인체에 유독한 화학물질로 가습기 살균제를 유통·판매해 재판에 넘겨진 SK케미칼 전 대표와 애경산업 전 대표가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부장판사 유영근)는 12일 업무상 과실치사 등 혐의로 기소된 홍지호 전 SK케미칼 대표와 안용찬 전 애경산업 대표에게 각 무죄를 선고했다.

아울러 SK케미칼과 애경산업, 이마트 및 제조업체의 전직 임·직원들 총 11명에게도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유죄가 확정된 옥시 등의 가습기살균제 원료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염화에톡시에틸구아니딘(PGH)과 이 사건에서 사용된 클로로메틸아소티아졸리논(CMIT)·메틸아소티아졸리논(MIT)는 구조와 성분이 다르다고 지적했다.

이어 “2014년 발간된 가습기살균제 피해사건 백서에서 PHMG·PGH는 명백하게 유해하다는 결론이 나온 반면, CMIT·MIT는 폐질환 같은 결과가 나온다는 걸 뒷받침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았고, 이에 검찰도 당시 기소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또 한국환경산업기술원과 환경부의 실험 결과 질병관리본부의 역학조사 결과도 CMIT 및 MIT 성분이 폐질환을 유발한다는 결론을 내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가습기 살균제 피해 인정 기준은 근본적으로 PHMG 및 PGH 피해사례로부터 도출된 것인데 물질성분이 상당히 다른 CMIT 및 MIT 살균제에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적절치 않을 수 있다”고 봤다.

이에 따라 재판부는 “CMIT 및 MIT 살균제 사용과 폐질환 발생 혹은 악화 사이에 인과관계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결론 지었다.

나아가 “피고인들이 제조·판매한 가습기살균제의 사용과 피해자들의 상해·사망 사이에 인과관계가 인정됨을 전제로 하는 공소사실 및 나머지 쟁점들 역시 더 나아가 살펴볼 필요 없이 이 사건 공소사실은 모두 범죄증명이 없다”고 판단했다.

아울러 “추가 연구결과가 나오면 역사적으로 어떤 평가를 받게 될지 모르겠지만 재판부로선 현재까지 나온 증거를 바탕으로 형사사법의 근본적 원칙 범위 내에서 판단할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앞서 검찰은 지난달 홍 전 대표와 안 전 대표에게 각 금고 5년을 구형하고 나머지 직원들에게는 각 금고 3~5년을 선고해달라고 요청한 바 있다. 금고는 수형자를 형무소에 구치하지만 징역처럼 강제노동은 시키지 않는 처벌이다.

이날 선고 직후 가습기살균제참사전국네트워크와 일부 피해자들은 기자회견을 열었다.

옥시·애경 제품을 사용해 폐 손상·천식 등을 앓게 됐다는 조모씨는 “모든 사람이 무죄를 받아 가슴이 멎을 것 같다”며 “그 제품을 써 사망에 이르고, 지금까지 치료를 받으면서 투병을 하는 저희 피해자들은 과연 무슨 제품을 어떻게 썼단 말이냐”며 호소했다.

이어 “그들은 진정 죄를 지었다. 제 몸에서 일어나는 일이 다 증거인데 그 증거조차를 인정하지 못하는 사법부나 가해 기업, 정부를 다 받아들이지 못하고 용서할 수 없다”고 울먹이며 말했다.

그러면서 “국가도 화학물질을 관리·감독할 의무·책임이 있었던 부분에 잘못을 인정하고 피해자들이 이렇게 싸우는 것에 귀기울이고 반성해야 한다”고 토로했다.

전국적으로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는 4천여명에 달하며, 충북지역에서는 살균제 피해를 신고한 170명 가운데 40명이 사망한 것으로 파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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