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배 시인 ‘이 골목은 만만한 곳이 아니다’ 출간

[충청매일 김정애 기자] 이성배 시인의 두 번째 시집 ‘이 골목은 만만한 곳이 아니다’(도서출판 고두미/1만원·사진)가 출간됐다.

시인의 시선은 여전히 ‘사람들’에게 닿아 있다. 사람이 배경이 되는 풍경 속에서 시인은 끊임없이 ‘나’를 부르는 소리를 듣는다. 너와 내가 따뜻하게 공존할 길은 없을까 궁리한다.

결핍과 상처로 신음하는 사람들을 향해 위로의 말을 건넨다. 괜찮다고. 이미 충분하다고. 시인의 그런 시선은 삶의 본질에 다가가려는 노력이라고 할 수 있겠다.

임보 시인은 시인의 시집을 접하고 “연전에 이성배 군이 신춘문예를 통해 시인으로 등단했다는 소식을 듣고 많이 반가우면서도 한편 놀라웠다. 그가 학창시절에 시를 좋아한 걸 알고는 있었지만 사회에 나가 수십 년 동안 세파에 시달리면서도 끝내 시의 끈을 놓지 않고 연찬을 거듭했구나 생각하니 숙연한 느낌마저 들었다”며 “이제 그 동안 써 온 작품들을 모아 두 번째 시집을 상재하게 되니 얼마나 기쁜 일인가? 농촌을 배경으로 한 그의 시는 소박하면서도 풍자와 익살이 넘쳐 미소를 자아내게 하는 재미가 있다. 그가 지닌 이런 건강하고 아름다운 시정이 이 각박한 세상을 부드럽게 정화시키는 청량제가 될 것으로 믿는다“고 밝혔다.

김민형 시인은 시집 발문에서 “살면서 겪는 모든 것이 삶의 본질이다. 슬픔이든 기쁨이든 일종의 해프닝 같지만, 본질에서 벗어나 일어나는 일은 하나도 없다. 본질이 어느 하나에 고정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인생이 ‘외로움’이나 ‘바람’, 또는 ‘행복’이나 ‘도덕’만이 아니기 때문에, 역동적이고 다양한 삶의 이야기들이 쓰여진다”며 “끊임없는 해프닝의 반복 속에서 드라마가 펼쳐진다. 어린 시절 그 배고프고 가난했던 기억이든, 가까운 이웃들과의 이별이나, ‘마을에서 마지막으로 삼베옷 입었던 방성골 어른’(‘중돈 마을 낡은 의자’)의 죽음이든 시인에게 그것은 해프닝일 수밖에 없지만, 인과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그게 본질이다. 시인은 그 사라지고 없는 자리를 애잔하게 바라본다. 왜냐하면 그 배경에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시인은 인간에 대해서는 알지도 못하고 꿰뚫어 볼 통찰력도 없다고 말한다. 다만 사람에게 시선이 간다. 그늘이 보이는, 늙고 아픈, 골병들어 죽을 만큼 부지런한, 두 눈에 하늘을 담은, 불빛이 많은 지점에서 좀 멀리 떨어져 사는 사람들. 이들을 위로하고 싶었다. 괜찮다고 말하고 싶었다. 이미 충분하다고 말하고 싶었다.

“몇 해 전부터 겨울이 시작되면 언 땅을 찍으며 무서리 내린 들에서 겨울 냉이를 캤다. 빈들에 홀로 앉아 있노라면 알맞게 외로워지고 지난날까지 슴슴해져서 또 한 시절을 버틸 기운이 생기기 때문이다.”

충북 괴산에서 태어난 이성배 시인은 2019년 농민신문 신춘문예 공모에 시 ‘부드러운 시간을 어느 곳에 쓰면 좋을까’가 당선된 후 첫 시집 ‘희망 수리 중’을 펴낸바 있다.   

음성군 맹동면에서 진천군 덕산면 가는 길

오래된 길 굽은 길

중돈 마을 입구

낡은 나무 의자 하나

마을에서 마지막으로 삼베옷 입었던 방성골 어른이

장승처럼 마을 앞을 내다보던 자리

그 뒤로

꼭대기 집 어른이 영정사진처럼 고요히 앉아

들고 나는 사람들에게 인사를 받던 자리

느티나무가 연두색 실로 꿰맨 조각보를 펼치고 있었지만

그 곁에 다른 의자가 놓인 적 없다.

해 든다고 이리저리 옮긴 적 없다.

여름내 빈 자리

며칠 사이

붉게 물든 나뭇잎 몇 내려앉아 있다.

 -‘중돈 마을 낡은 의자’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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