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청주우편집중국장
수필가

[충청매일] 눈이 오면 뭔가 모르게 자신도 모르는 사이 동심의 세계에 빠져들게 하고 눈은 설렘을 주고 허공에 들뜨게 하는 마력이 있다. 온대지에 수북이 쌓인 하얀 눈을 바라보면 다른 세상처럼 느껴지고 추억과 낭만을 자아낸다. 사계절이 뚜렷한 우리나라는 철별로 색다른 광경을 맛볼 수 있는 천혜의 축복의 땅으로 자랑스러운 나라다.

새싹이 돋아나는 봄은 봄대로의 맛이 있고, 푸름과 싱그러움이 넘치는 여름은 여름대로, 오색단풍 찬란한 가을은 가을대로, 하얀 눈이 내리는 겨울은 겨울대로의 멋과 낭만이 있다. 겨울엔 눈 오는 날을 학수고대하며 기다리는 사람도 많이 있지만 반대로 눈을 반가워하지 않는 사람 또한 주변에 많이 있다.

지난 시절 눈이 오면 눈사람 만들고 눈썰매도 타고 친구들과 눈싸움도 하며 자라서 눈에 대한 추억과 낭만이 많다. 그 시절엔 지금처럼 놀이시설이나 용품이 없었기 때문에 자연에 순응하며 자연물을 활용한 놀이를 찾으며 자랐다.

한번은 눈싸움할 때 눈을 너무 단단하게 뭉쳐 던진 게 친구 이마에 정면으로 맞아 피가 난적이 있는데 지금도 미안하고 짠하다. 겨울이면 고향 동네 길 모퉁이 비탈길에 눈을 녹여 미끄럽게 만들어놓고 눈썰매 탔던 아름다운 추억은 영원히 잊을 수 없다.

반면에 눈이 오는 날이 싫었던 기억도 갖고 있다. 첫 번째, 군인시절 눈 오는 날이다.

강원도 화천에서 근무했는데 그 시절엔 눈도 자주오고 많이 와서 싫은 정도가 아니라 지겨웠다고 표현하고 싶다. 지금처럼 제설장비가 있는 것도 아니고 자체적으로 만든 싸리비가 전부였는데 제때 도로에 쌓인 눈을 치우지 않으면 전방으로 이동하는 제반차량이 이동할 수 없기 때문에 밤낮으로 치워야 했다. 춥고 배가 고팠는데 몇 시간에 걸쳐 다 치우고 나면 먹을 거라곤 겨우 건빵이 고작였는데 그것도 풍족하지 않아 눈치 보며 먹었다.

설상가상 눈 치우다 잠시 쉬는 시간이면 선배들은 심심하니까 ‘닭싸움’이나 ‘씨름’을 시켰는데 배는 고프고 힘은 바닥이라 흔한 말로 죽을 맛이었다.

지금도 그 시절 눈 오는 날을 생각하면 끔찍하다.

두 번째, 직장생활하며 타 지역 원거리 근무 시 눈 오는 날이다. 충남 태안에 3년간 가족과 떨어져 근무했는데 집에 왔다 월요일 새벽에 갈 때 눈이 와서 고생을 많이 했고 그때 겨울은 두려웠었다.

그 당시 3시간 정도 소요됐는데 집에서 출발할 때는 멀쩡하다 중간에 눈이 와서 애를 먹고 아찔했던 순간이 여러 번 있었다. 그래서 그때 당시는 눈이 안 오기를 간절히 빌었고 눈이 싫었다.

마지막으로는 직장생활 40년 동안 눈 오는 날은 동료들 안전 때문에 눈을 즐길 수가 없었다.

특히 국장으로 재직 시에는 눈 오는 날은 비장한 마음으로 집배원들 출국할 때부터 안전운전을 기원하는 배웅인사를 하며 하루 종일 전원 귀국할 때까지 마음을 놓지 못했다.

우편집배원은 항시 밖에서 근무해야하기 때문에 본인들은 물론 책임자로선 일기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비 오면 비와서 걱정, 눈 오면 눈 와서 걱정, 더우면 더워서, 추우면 추워서 걱정해야했고 공직40년 일기에 편한 날이 별로 없었다.

국장시절 더운 여름에 에어컨 제대로 못 틀었고 겨울엔 온풍기 작동하기가 편하지 않았다.

이렇듯 눈 오는 날을 반기는 사람과 싫어하는 사람이 함께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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