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명
온깍지활쏘기학교 교두

[충청매일] 무과 유엽전 과녁에는 검정 관만 있는데, 조선 시대 그림을 보면 뜻밖의 과녁들이 많습니다. 그중에서 눈길을 끄는 것이 주역의 괘입니다. 이형상의 ‘탐라순력도’에도 그렇고, 김홍도의 ‘북일영’이라는 그림에도 그렇고 과녁 위쪽에 괘가 그려졌습니다. 그 괘 밑에는 동그라미가 있습니다. 중국 사신 이극돈이 그린 ‘봉사도’에는 위아래에 괘가 그려졌습니다.

일관되게 발견되는 괘는 리(☲)괘입니다. 이걸 두고 왜 과녁에 이런 그림이 들어갔는지 아직껏 명쾌하게 밝혀낸 사람도 없고 설명해주는 사람도 없습니다. 활쏘기가 학문의 변방에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이에 대해 최초로 설명은, 리괘가 불을 상징하기 때문에 정열을 뜻하고, 불이 타오르듯이 맞히려는 의지를 일으키라는 뜻이 있지 않은가 하며 나름대로 조심스럽게 해석한 것입니다. 이에 대해 좀 더 명쾌한 설명을 한 것은 디지털 국궁신문의 기사입니다. 주역을 연구하는 분에게 자문을 받았다는데, 다음과 같습니다.

“팔괘에서 활(弓)을 나타내는 것은 감괘(☵)이다. 리(離)는 무인(武人), 갑주(甲胄)를 상징하고, 감(坎)은 활(弓)을 상징한다.”

저도 주역 책을 들여다보기는 했습니다만, 감이 활을 나타내고 리가 갑주를 상징한다는 얘기는 처음 듣는 거라서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불꽃 같은 의지보다는 좀 더 그럴 듯한 해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한 명쾌한 해석이 나온 것은 2018년에 출판된 책 “활쏘기 왜 하는가”입니다. 여기서는 음양오행의 원리로 설명을 했습니다.

즉 주역에는 복희팔괘도와 문왕팔괘도가 있는데 이것은 모두 오행가들이 음양오행을 정당화하려는 방편으로 하도와 낙서를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복희팔괘도에서 팔괘는 방위에 따라 배치되는데, 그때 리괘가 남쪽에 자리하고, 감괘가 북쪽에 자리한다는 것입니다.(“우리 침뜸의 원리와 응용”) 결국 동서남북과 전후좌우를 표시하기 위하여 조선 시대 사람들은 이런 괘를 썼다는 것이고, 리괘는 위를 나타내기 위해서 표시한 것이라는 결론입니다.

이로써 과녁 그림에 나오는 괘의 존재가 명쾌해졌습니다. 그 밑의 동그라미는 태극을 의미합니다. 태극은  이나   모양으로 그리지만, 단순히 표현할 때는 그냥 동그라미로 그리기도 합니다. 참고로 위의 태극 그림을 보면 물결치며 둘로 나뉘는데, 이 경계선이 새 을(乙) 자나 활 궁(弓) 자를 닮았다고 해서 조선 후기 여러 민간 종교에서는 궁궁을을(弓弓乙乙)이라고 주문을 외우기도 했습니다.

주역의 관념이 과녁에 들어온 것은 굉장히 드문 사례입니다. 우리나라의 과녁에만 있는 것 같습니다. 중국이나 일본의 과녁 그림을 좀 더 확인해봐야겠지만, 유학에 대한 신봉이 극에 이른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이라고 보면 될 듯합니다. 활쏘기를 하다 보니 별걸 다 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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