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청주민예총 사무국장

[충청매일] 겨울은 봄을 준비하는 계절이다. 어떤 이는 계절의 마지막 절기라 말하지만, 가을을 보내고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되는 계절이 겨울이다. 겨울은 한해를 준비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먹을거리가 부족한 겨울, 몇몇 동물이 선택한 것은 동면이다. 봄부터 가을까지 힘든 농사를 마치고 잠시의 휴식의 기간, 즉 농한기가 겨울이다.

현대 사회에서는 계절의 변화가 일상생활의 변화를 가져오지 않는다. 특히, 고정적인 급여가 보장되는 않는 예술가들에게 겨울은 힘든 시기이다. 동물처럼 동면에 들지도 못하고, 풍족한 가을걷이를 할 논도 밭도 없다. 현대 사회에서 예술을 팔아 돈을 버는 일은 어렵다. 자본주의 시장에서는 아주 유명해서 기업의 이윤 추구에 도움이 되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한다. 아쉽게도 우리 지역의 예술가 대부분은 대중문화를 선도하는 아이돌 가수나 영화배우들처럼 인기 있지도 기업 이윤에 도움이 되지도 않는 존재들이다.

늦은 봄부터 초겨울까지 공연, 전시, 예술교육, 출판 등의 활동을 하거나 문화예술 관련 단체 또는 공공분야 문화예술 사업에 종사한다. 이들 모두는 겨울이 깊어지기 전 회계를 정산해야 하고 사업을 보고해야 한다. 그리고 이듬해 3월 또는 4월까지 허리띠를 졸라매거나 손가락을 빨며 수입 없는 겨울을 나야 한다.

어떤 이는 이런 예술가들을 무능하다고 비판할지 모른다. 그러나 이 비판에는 자본만능주의가 깔려있어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한 달에 고작 100만∼150만원의 돈을 받아가며 팔리지 않는 작품 활동과 일을 병행하는 것은 돈보다 가치 있는 일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예술가의 자존심이며 예술적 가치다. 그리고 누군가는 꼭 해야 하는 일이란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겨우내 빈둥빈둥 노는 이도 없다. 일하면 반드시 대가가 있어야 한다는 사고방식도 이들에겐 적용되지 않는다. 예산이 없고 지원도 없는 시기에도 부지런을 떨어야 한다. 농한기 농부들도 다음 봄을 위해 농기구를 정비하고 씨앗을 준비해 놓듯이 예술가들도 볕 좋은 날 예술적 영감을 준비한다.

예술가에게 2020년은 봄도 여름도 가을도 없었다. 코로나19로 인해 세계가 마비되었고 국가가 마비되었고 사회가 학교가 마비되었다. 경제는 말할 수 없이 어려워졌고 어떻게 버티며 겨울을 맞이했는지도 알 수 없다.

코로나19는 2021년에도 계속될 것이다. 공연은 취소되고 예술교육의 장도 없어지고 사회에서 예술이란 단어도 사라질지 모른다. 순수예술 예산은 물가 상승률을 따라가지 못하고 오히려 퇴보하고 있다. 말로는 문화가 재산이라는 둥 문화가 경제력이라는 둥 말을 하지만 정작 돈이 되지 않는 문화예술은 항상 뒷전이다.

오랜만에 찾은 길은 새로운 길이 뚫려 가까워지고 길에 허리가 잘려나간 산은 낯선 풍경을 만든다. 저 길을 새로 만드는데 드는 비용의 10분의 1이면 예술가의 겨울나기는 좀 수월해질 것이다. 예술가들의 겨울나기는 나눔의 일을 준비하는 기간이지만, 항상 배가 고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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