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그러나 최풍원의 생각처럼 모든 게 돌아가지는 않았다. 경강상인들은 한양에서 대량으로 생산되는 공방물산의 이점을 앞세워 북진여각의 상권을 야금야금 잠식해 들어오고 있었다. 그 방법은 이제까지 전통적인 장꾼들과 장마당에서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상술이었다. 평생을 장마당에서 잔뼈가 굵어온 장사꾼조차 생각지도 못할 정도로 상술도 다양했고 술수도 교묘했다. 경강상인들은 북진여각의 상권인 남한강 일대를 휘젓고 다니며 곳곳에 자신들의 물산을 팔아줄 농민들을 모집했다. 경강상인들은 마을에서 수완이 있거나 발이 넓은 사람을 골라 그 집에 잡화점을 차려 물건을 풀어놓고 마을사람들이 언제든 와서 구경하고 마음에 들면 사가도록 했다. 그런데 처음에는 전혀 돈을 받지 않고 그냥 물건부터 주고는 돈이 생기거나 추수 때가 되면 갚도록 했다. 그리고 판매부터 수금까지 물건을 풀어놓은 집주인에게 맡기고 판매량에 따라 임금을 주었다. ‘공짜면 비상도 먹는다’고 우선 물건부터 주고 값도 싸니 사람들은 너도나도 가져갔다. 물건을 사는 사람들 입장에서도 한 동네 사람이 물건을 파니 뜨내기 장사꾼들보다는 믿음이 갔고, 물건에 이상이 있으면 언제든 바꿀 수 있는 것도 좋았다. 경상들 입장에서도 그 마을사람이 직접 관리를 해주니 떼일 염려가 줄어들었고 발품과 인력을 크게 줄일 수 있었다. 경상들은 주기적으로 물건 파는 집만 돌며 팔린 물건을 보충해주고 모아놓은 특산품만 거둬들이면 되었다.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상술이었다. 농민들은 하미는 북진여각에서 받아먹고 특산품은 경강상인들에게 넘기는 꼴이었다. 그렇게 되자 북진여각에서 거래되는 물산들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북진도중회 객주들 사이에서도 동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객주들도 북진여각에서 경강상인들로부터 도거리한 물건을 받아 파는 것보다 경상들의 값싼 물품을 직접 받아 파는 것이 서너 배의 이문을 더 남길 수 있었다. 이제껏 거친 장마당에서 생사고락을 함께 해왔지만 모양이나 질이 월등히 뛰어나고 가격까지 저렴한 한양의 다양한 물산을 외면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객주들이 동요를 일으키게 된 데는 한양을 중심으로 일어나고 있는 장시의 변화에도 있었지만, 최풍원의 독단적인 도중회 운영이 더 큰 문제였다. 최풍원은 사선 스무 척을 건조한 이후 점점 퇴락의 나락으로 빠져들었다. 그럴수록 최풍원 대행수도 마음이 조급해졌다. 그러자 방책이라고 내놓은 것이 더더욱 도중회 객주들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장마당을 살리겠다고 농민들에게 푼 하미도 그랬다. 도중회의 많은 객주들이 반대를 했지만 최풍원은 자신의 고집대로 북진여각의 상권인 남한강 일대에 천 석이나 되는 하미를 뿌렸다. 아무리 헐값으로 산 하미라도 천 석이면 큰돈이었다. 더구나 경복궁 중건으로 물가가 폭등하자 하미 값도 덩달아 올라 그대로 두었다면 앉아서도 거금을 벌 수 있었다. 그런데도 장마당을 되살리겠다며 밑 빠진 독이나 다름없는 농민들에게 하곡을 쏟아 부었고 장마당도 되살아나지 않았다. 사선 제작에 들어간 돈도 거액이 빚으로 남아 있었다. 장마당에 사람들이 들끓고 짐배가 쉴 사이도 없이 강을 누비고 다녀야 지금 북진여각에 닥친 위기를 넘어갈 수 있었다. 그러나 나날이 장마당은 쪼그라들기만 하고, 북진과 한양을 오가며 쉴 세도 없이 물산을 실어 날라야 할 사선도 태반은 북진나루와 삼개나루에 정박해 있었다. 그런데다 한양의 새로운 물산들까지 밀려들어 북진여각의 상권을 잠식해갔다.

모으는 것이 힘들지 사라지는 것은 일순간이었다. 쌓는 것은 힘들어도 허물어지는 것은 한 순간이었다. 더구나 재물이라는 것은 쌓여 있을 때나 그 가치가 대단한 것이지 빠져나가기 시작하면 허깨비나 다름없었다. 북진여각의 명성이 흔들리자 사람들도 점점 떠나기 시작했다. 세상인심이라는 것이 그런 것이었다. 세상인심이 아니라 사람이 그런 것이었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것이 사람들 속성이었다. 의리라는 것도 내 뱃속이 편안할 때나 지켜지는 것이었다. 내일이 어찌 될지 모르는 흉흉한 이런 세상에서는 당장 눈앞에 보이는 이득이 최고였다. 입으로는 칭송을 하면서도 손이나 발길은 이득을 취할 수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것이 사람들 본능이었다.

“어떻게 사람들 인심이 이렇게 달라질 수 있겠는가?”

싸전을 하는 박한달 상전 객주가 푸념 섞인 소리를 했다.

“벌래 그러거여. 우리 피륙전에도 수년 거래하던 사람들이 경상들 싼 물건 사겠다고 다 옮겨갔구먼.”

피륙전을 하는 김상만 객주도 한숨을 쉬었다.

이러거나 저러거나 북진장 뿐만 아니라 북진여각도 한양에서 쏟아져 내려오는 공장 물산을 맥을 못 추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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