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이 답답아! 평생 작대기 그으며 산골로 빠꼼이 장사만 돌아다녔으니 물정을 알 수가 있냐? 내 얘기를 잘 들어보거라. 지금까지 북진장에서 소금 한 섬 값은 한 냥이었어. 그런데 소금배는 올라오지 않고 살 사람은 많아. 어떻게 되겠냐? 돈을 더 주고라도 소금을 사려고 하겠지. 당연히 값은 오르고 너는 그것을 오른 만큼 더 비싸게 사람들에게 팔겠지?”

“당연한 것 아니여? 그런데 그게 당백전하고 뭔 상관이여?”

“나라에서 대궐을 지으려면 나무며 돌이며 흙이며 목수며 일꾼이며 얼마나 막대한 물품과 인력이 들어가겠냐? 물품과 인력은 그냥 쓰냐? 그게 다 돈이지. 그런데 매년 나라에서 생산되는 물품은 일정하지. 그런데 갑자기 나라에서 큰 공사를 벌여 조달할 물품이 딸리니 어떻게 하겠냐? 팔도에 있는 모든 물산을 거둬들여야 하고 그러면 장마당에 물가가 치솟게 되지 않겠냐? 그러다보니 한 냥에 사던 물건을 두 냥 세 냥에 사게 되고 그만큼 돈이 시중에 많이 풀리니 값은 점점 더 치솟게 되는 게 아니겠냐?”

나라에서는 이미 이백여 년 전부터 상평통보를 주조해 써오고 있었다. 아주 깊은 산중이 아니라면 이제는 웬만한 향시에서는 엽전이 사용되고 있었다. 그러다 새로 임금이 즉위하자 대원군은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임진왜란 때 불타 소실된 경복궁을 중건하기로 했다. 나라의 기반이 탄탄하다 해도 대궐을 짓는 일은 워낙 큰 사업이라 재정이 고갈되는 것은 당연지사였다. 그런데 조선은 이미 곳곳에서 병폐가 만연하고 있었다. 이런 시기에 국가적인 대공사를 벌였으니 속출되는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중에서도 제일 급선무는 부족한 자금을 해결하는 것이었다. 대궐을 중건하는 데 들어가는 물자가 워낙에 막대한 양이라 이미 물가는 폭등해 기존에 통용되던 상평통보로는 감당 할 수가 없었다. 그러자 대원군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상평통보가 아닌 최고액면인 당백전을 주조하기 시작했다. 당백전은 이제껏 통용되고 있던 상평통보 일 문의 일백 배에 상당하는 고액화폐였다. 하지만 실질 가치는 상평통보의 오륙 배에 불과했는데 명목가치는 스무 배에 달했으니 팔도 곳곳에서 불법 사주조가 만연했다. 그러니 장마당의 물가는 폭등하고 가뜩이나 힘겨운 농민들의 삶은 더더욱 핍박해졌다.

“백성은 등짝이 휘는데, 임금 등허리만 따스우면 단가?”

“이눔아! 그 따위 아가리질 놀리다가 모가지 날아가!”

“이깟 모가지 날아간들 대수여?”

“니깟 눔이야 건사할 가솔도 없이 홀홀단신이니 그깟 모가지지만, 난 건사할 식구가 줄줄하니 안직은 이 모가지가 필요 혀. 그러니 나 있는 데서는 그런 아가리 함부로 놀리덜 말어! 괜히 니놈 때문에 덩달아 잡혀가면 우리 식구는 다 굶어죽는다.”

“모가지 날아가 죽기 전에 굶어죽을 판이니 그런 걱정일랑 허지두 말어!”

장돌뱅이 둘이 서로 왈가왈부 떠들어댔다.

“이러나저러나 장만 아니라 어디를 가도 돈도 마르고 물산도 마르니 등짐장사도 못해먹게 생겼구먼.”

“이런 세상에 뭐는 해먹을 게 있겄냐?”

북진도 예외 없이 물가가 폭등했다. 그중에서도 당장 먹어야 사는 곡물가격은 천정부지로 올랐다. 이러자 쌀을 가지고 있는 양반과 부자들은 아랫것들을 시켜 복복리로 장리쌀을 내놓았다. 값이 싸도 이자가 무서워 굶을 판에 고리로 내놓은 장리쌀은 먹고 야반도주라도 할 요량인 사람이 아니면 그 쌀을 빌어먹을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래도 굶주리는 데는 장사가 없었다. 아무리 고리가 무서워도 굶어죽을 판이면 뭐라도 내놓아 우선 허기진 창자를 채워야 했다. 매에는 장사가 있어도 배고픈 데는 장사가 없다고, 굶주림을 참아내다 더는 견디지 못한 고을민들은 손바닥만한 농토를 내놓고 종당에는 가솔들이 등을 붙이고 자는 집까지 담보를 잡혀가며 고리의 장리쌀을 빌려갔다. 장리쌀은 정해진 값도 이자도 없었다. 사람에 따라 달라졌다. 담보가 약하거나 없는 사람에게는 소량이라도 비싸게 받았고, 설사 담보가 있다고 해도 장리쌀은 쌀이 아니라 금덩어리를 빌리는 것이었다. 그런데다 제때 갚지 못하면 원금과 이자는 무서울 정도로 불어났다. 이 세상에서 제일 빨리 자라는 것이 있다면 장리쌀 이자였다. 그러니 빌려먹은 장리쌀과 이자 갚기는 고주박에 솔잎 틔우기보다 힘들었다. 차라리 고목에 꽃 피우는 것이 더 수월할 터였다. 그렇다고 생목숨 끊어질 때까지 굶을 수는 없었다. 견디다 못해 장리쌀을 빌리려고 목숨보다 귀한 땅을 들고 부잣집 문턱을 넘어설 때 벌써 그 담보는 이미 그들의 아가리 속으로 들어간 것이나 다름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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